항목 ID | GC05700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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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寶泉寺-大師浮屠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내무장길 249[축동리 634-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인진 |
현 소재지 | 보천사 부도 -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축동리 6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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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부도 |
관련 인물 | 취계당 대사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 140㎝ |
소유자 | 보천사 |
관리자 | 보천사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축동리 보천사에 세워져 있는 부도.
[개설]
석조 부도는 고승이 입적한 후 유체의 풍장 또는 다비하고 나온 유골이나 사리를 수습하여 봉안하기 위한 기념적인 조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왕사(王師)나 국사(國師)를 역임하였거나 그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았을 때 석조 부도를 세울 수 있어서 국가 주도로 부도가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도의 형식이나 양식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억불숭유 정책 기조에 따라 이전 시기에 비해 불교계가 위축되면서 부도의 건립도 드물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불교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다시 석조 부도의 축조가 성행하게 되었다.
[위치]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축동리 634-1 보천사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및 형태]
보천사는 602년(진평왕 24) 혜공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1352년(공민왕 2) 나옹 대사가 중창하였다. 1924년 일제 강점기 때 사세가 기울어진 틈을 타서 대웅전의 뛰어난 건축 예술을 탐낸 일본인이 법당을 매입하여 일본으로 옮겨갔고, 그로 인해 폐찰이 되었다고 한다.
보천사 입구에는 4기의 부도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보천사 취계당 대사부도이다.
취계당 대사는 조선 인조 때의 고승으로 1652년(효종 3) 보천사에서 입적한 스님이다. 부도 중 왼쪽부터 3기는 보천사 옛 절터 입구에 있던 것을 옮긴 것으로 모두 석종형 부도이다. 보천사 취계당 대사부도는 왼쪽에서 세 번째 것으로, 높이가 140㎝, 앞면 상부에는 연잎 모양을 형상화하고 네 귀에는 각각 연꽃봉오리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금은 풍화 작용으로 인하여 음각으로 새겨진 '취계당 대사 지수'라는 글귀마저 희미하다. 보천사 취계당 대사부도는 1983년 해체 복원할 때 유기로 만든 사리함이 나왔는데, 1984년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 기증, 소장되어 있으며, 2005년 12월 29일 군산시 향토문화유산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이외의 부도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다. 둘 다 자연석으로 된 밑돌[하대석] 위에 대석을 올려놓았다. 탑신은 계란형이고 위에 옥개석을 올려놓았다. 옥개석의 상면에는 포주를 장식하였으며, 남쪽에 있는 화강암 부도로 형태가 비슷하다.
[의의와 평가]
보천사 취계당 대사부도는 군산 지역에 존재하고 있는 부도 가운데 주인공을 확실하게 알 수 있어서, 조선 시대 군산 지역의 부도 제작 기법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부도에서 사리함이 확인되었기에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