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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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四一九革命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종안 |
[정의]
1960년 4월 22일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학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주의 항쟁.
[개설]
1960년 4월 19일 전국의 남녀 고등학생 주도로 일어난 반독재 민주 혁명으로 ‘4·19 의거’, ‘4월 혁명’으로도 불린다.
[역사적 배경]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대통령·부통령 선거는 야당 선거 위원들이 정치 깡패들에게 폭력을 당하는가 하면 투표함을 바꿔치기하는 등 자유당의 부정이 극에 달하였다. 군산 지역에서도 공무원이 동원되었고, 동네 반장이 이끄는 3인조, 5인조 선거가 자행됐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열사의 시체가 경남 마산 앞 바다에서 발견되자 학생들의 분노는 하늘로 치솟았고, 각 지역 도시에서 데모가 일어났다. 군산도 10개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데모에 앞장섰다. 군산 고등학교, 군산 동 중학교 학생 200여 명은 4월 22일 오후 4시 30분 월명산(月明山)[101m]에 집결, 이승만의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며 시가 행진에 돌입했다.
[경과]
군산 지역에서도 10개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데모에 앞장섰다. 군산 고등학교, 군산 동 중학교 학생 200여 명은 4월 22일 오후 4시 30분 월명산에 집결, 이승만의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며 시가 행진에 돌입했다.
데모에 산발적으로 가담한 군산 상업 고등학교, 군산 남 중학교, 군산 중학교, 군산 북 중학교, 군산 여자 고등학교, 군산 여자 중학교, 군산 여자 상업 고등학교, 중앙 여자 중학교 학생들이 합세, 1,200여 명으로 불어난 데모대는 두 갈래로 나뉘어 ‘학원에 자유를 달라!’, ‘각지에서 무참히 쓰러져간 학도들을 정부는 책임지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내를 행진하고 오후 6시 40분 자진 해산하였다.
1960년 4월 25일 300여 명의 대학 교수가 이승만 사임을 요구하는 제자들을 지지하면서 서울 시내를 행진하는 거리 시위를 전개했다. 결국, 이승만은 4월 26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결과]
군산 시민과 학생들은 1960년 4월 24일 『동아 일보』가 자체적으로 펼친 ‘4월 민주 혁명 순국 학생 위령탑’ 건립 기금 모금 운동에도 군산 지국을 찾아 위문금을 전달하는 등 적극 동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