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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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地圖貼全羅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병남 |
[정의]
정상기[1678~1752]의 「동국지도」를 모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19세기 전반기 제작 『고지도첩』 전라도 편의 군산 관련 부분.
[개설]
「동국지도」는 ‘대전도(大全圖)’와 이를 팔도로 나누어 첩으로 만든 ‘팔도분도’로 이루어져 있다. 대전도는 원본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모양을 파악할 수 없으나 대략 가로 130~140㎝, 세로 240~260㎝ 정도의 대축척 지도이다. 따라서 이 전도는 여러 장의 종이를 이어 붙여서 그려야 하는 불편함과, 열람·휴대상의 문제 때문에 후대에 활발하게 전사되지 못하였고, 대신에 팔도분도의 형식이 정상기 지도사본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팔도분도의 가장 큰 특징은 첩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열람과 휴대상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이미 16세기를 거쳐 17세기에 널리 유행하던 방식과 성과를 그대로 계승하여 좀 더 정밀한 대축척의 분도첩을 만들었고, 이와 같은 양식은 이후 각 군현지도집을 비롯하여 김정호의 「청구도」, 『대동여지도』에 이르기까지 대축척 지도첩이 조선 후기 지도학사상 하나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구성]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그의 아들 정항령, 손자 정원림, 증손 정수영 등 하동 정씨 가문에 의해 계속 수정, 보완되면서 조선 후기 팔도분도의 선도적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이후에 이를 모방한 많은 사본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초기에는 「동국지도」를 그대로 모사하고 지명과 같은 일부의 변화된 사항들만 수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본의 형식에서 벗어나 지역별 오류를 시장하거나 지도 윤곽 자체를 상당 부분 수정하는 등 변화 발전하기에 이른다.
『고지도첩』의 전라도 편 중 군산만을 확대해 놓은 위 지도는 이전의 지도들과는 다른 군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산줄기들과 강의 줄기가 자세히 그려져 있고 군산 인근의 섬들이 사실적으로 정확히 그려져 있다. 또한 현재 군산시의 위치에서 볼 때 서쪽에 칠읍해창이 자리하고 동쪽에는 군산진이 있어 동과 서로 양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도의 정확함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로 금강의 줄기를 들 수 있는데 용안에서 군산까지 금강 하류의 강 흐름이 현재의 모습과 거의 똑같다. 이전의 지도에서 보이는 강(江)의 표현 방식이 강이 흐르는 방향만을 나타내는 방법이었던 점에 견준다면 『고지도첩』에 그려진 강은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금강 줄기 옆으로 칠읍 해창[군산창], 서시포 해창[서포의 임피 조창], 나리포 해창[나포의 창], 용안창, 덕성창 등 국가 경제의 기본인 세곡을 운반하는 해창들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 지도의 발달 과정까지도 엿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