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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리 고인돌 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616
한자 華里支石墓群
이칭/별칭 화리 지석묘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화리 102-3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권승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8년 1월 5일연표보기 - 화리 고인돌 떼 경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8년 1월 8일연표보기 - 화리 고인돌 떼 경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완료
소재지 화리 고인돌 떼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화리 102-3지도보기
성격 고인돌
크기(높이,지름) 180×40×40㎝[1호]|160×170×40㎝[2호]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떼.

[개설]

청도군 각남면 화리 일원에 분포하고 있는 화리 고인돌 떼는 굴미들의 동남쪽에 군집을 이루어 분포하고 있다. 선행된 조사에서 10여 기의 상석이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현재는 경지 정리 과정에서 복토되어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1978년 농업용수용 파이프 설치 과정에서 고인돌이 노출되어 경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긴급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간 돌검과 간 토기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유적의 성격은 화리 일대에 조성된 청동기 시대 무덤으로 판단된다.

[위치]

청도군 화양읍에서 풍각면 방면으로 연결되는 20호선 국도의 남쪽에 있는 화리로 진입하면 굴미들이 나타나며, 들판의 동쪽 편에 치우쳐 10여 기의 상석이 분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78년 1월 5일에 화리 194-3번지에 농업용수용 파이프를 개설 과정에서 굴착 작업을 하던 중 청동기 시대 고인돌과 간 돌검과 간 토기 등이 노출되어 경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긴급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1978년 1월 8일 화리 208번지에 있던 상석을 주민들이 들어내고 유물을 확인하던 과정 중 청도군청 공보실에서 위 사실을 알고 현장을 보존토록 하여 추가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동일한 성격의 청동기 시대 고인돌과 함께 민무늬 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다.

[형태]

일부 조사가 이루어진 화리 고인돌 떼의 기본 구조는 상석과 하부 구조로 이루어진 청동기 시대 무덤이다. 1호 고인돌 규모는 180×40×40㎝이며, 2호는 상석 크기 160×170×40㎝, 돌널무덤 160×40×40㎝이다. 내부 구조는 개석은 없이 돌널만 남아 있었으며, 단벽은 1매의 판석, 장벽은 2매의 판석으로 연결하여 벽면으로 사용하였다.

[출토 유물]

간 돌검 1점, 석촉 11점, 간 토기 1점, 민무늬 토기 조각 2점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조사 결과 10여 기의 상석이 있었으나, 현재 경지 정리 과정에서 매몰되어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가장 큰 규모의 상석은 길이 3.2m, 너비 1.2m, 높이 1.7m 정도이며, 대부분 1m 내외의 작은 상석들이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었다.

[의의와 평가]

화리 고인돌 떼청도천의 범람과 퇴적으로 형성된 충적 평야인 굴미들의 동남쪽에 크고 작은 상석들이 군집을 이루어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지형은 선사 시대 유적이 입지하기 좋은 환경이며, 주변으로 칠성리 고인돌 떼가 있는 등 화리 일대가 청동기 시대 대규모 마을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됨에 따라 상석이 입지한 주변은 무덤 공간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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