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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청년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444
한자 高麗靑年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 고려 청년회 조직
개칭 시기/일시 1925년연표보기 - 고려 청년회에서 화양 청년 체육회로 개칭
최초 설립지 고려 청년회 설립지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성격 청년 운동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개설]

청도 지역의 청년 운동 단체는 1920년 대에 들어서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1920년 7월 청도 청년회가 설립된 이후 1923년 성현 청년회(省峴靑年會), 1924년 풍각 수양단(豊角修養團), 1926년 유천 청년회(楡川靑年會), 1927년 풍각 청년회(豊角靑年會)·대성 청년회(大城靑年會)·풍각 기독교 청년회(豊角基督敎靑年會)가 조직되었다. 이즈음 고려 청년회(高麗靑年會)가 화양(華陽)에서 조직되었다.

[변천]

고려 청년회화양 청년회라고도 했는데, 고려 청년회는 청년 운동과 사회 운동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화양 지역에 있던 오산계(鰲山契)를 모체로 조직되었다. 1925년 고려 청년회화양 청년 체육회(華陽 靑年 體育會)로 개칭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고려 청년회는 청년 운동의 일환으로 도주 소비조합(道州 消費組合)을 조직하여 일본 상품의 불매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근검절약을 계몽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고려 청년회화양 청년 체육회(華陽靑年體育會)로 개편하고 야구부와 연극부를 두었다. 야구부는 각 처에 원정 경기를 많이 하였고, 연극부는 소인극(素人劇)·강연 등을 통해 일제의 황민화 정책에 항거하기도 했다.

[현황]

1928년 7월에 이르러 청도 지역에서는 청년 단체를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927년 민족 협동 전선체인 신간회가 탄생하자 조선 청년 동맹은 협동 전선을 강화하기 위해 각 지역에 단일한 청년 단체를 결성하고자 했다. 이에 1927년 후반에서 1928년 후반까지 각 지역에서 청년 동맹이 조직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청도 지역에서도 일어나 청도 청년회·풍각 청년회·대성 청년회 등 각지의 청년회를 해체하고, 단일한 청도 청년 동맹을 조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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