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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D020302
한자 廢校 危機에 처한 豊島分校와 學生들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영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 251번지에 있는 풍도분교는 대부동 대남초등학교 소속의 공립초등학교이다.

1933년 5월 1일 진명학원으로 개교하여 1943년 3월 23일 제1회 졸업식을 통해 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48년 9월 1일에 대부국민학교 풍도분교로 승격하였으며, 1950년 제1회 졸업식을 통해 1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그 후 1958년 3월 31일 풍도분교는 풍도국민학교로 승격하여, 1959년 2월에 제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풍도국민학교에서는 1968년부터 도리도 어장으로 이동한 풍도 주민들을 따라 도리도에 계절이동교실을 설치하고 수업을 개시하기도 하였다.

1986년 제28회 졸업식을 거행하였으며, 같은 해 3월 1일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로 인가되어 1988년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 제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교육목표는 ‘예의 바르고 마음이 따뜻한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새롭게 생각하는 어린이’이며, 교목은 소나무, 교화는 개나리이다. 특기적성교육으로 생활영어와 컴퓨터 교육, 한자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04년부터 더 이상 1년에 두 차례 도리도까지 오가지 않아도 되는 풍도분교의 식구는 일곱 명이다. 4학년 김은서, 3학년 최소영, 그리고 1학년 임다예와 올 2학기에 전학 온 남학생 하나, 교직 생활 16년째인 분교장 김수[38세] 선생님과 28년 경력의 여환선[47세] 선생님, 그리고 기사 1분이다. 원래 학생 수가 3명이었으나, 육지에서 학생 하나를 유괴(?)해 왔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육지에서 학생을 겨우 전학시켜 폐교 위기를 넘겼다.

풍도분교 아이들은 스승의 날이 왜 부담스러운지조차도 모른다. 선생님 앞에서도 거침없이 방귀를 뀌면서 코를 막으라는 순진한 아이들은 학교를 제집처럼 오갈 뿐이다. 그리고 주민들은 ‘나홀로 입학생’이더라도 계속 이어져 풍도분교가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풍도 유일의 슈퍼에서 햄버거와 피자를 사 먹을 수 없을지라도, 시험점수에서 1등이란 등수도 의미가 없는 모두가 1등인 분교의 아이들, 이들은 학년에 관계없이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한다.

전국에서 가장 넓은 학교를 가진 아이들이지만, 육지의 또래들이 노는 모습에서 부러움을 느끼고 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가을운동회를 위해 대부초등학교로 떠나는 풍도분교 학생들은 친구가 많지 않다는 사실에서 육지가 그립다고 말한다.

풍도풍도분교에는 아픈 사연이 많다. 그 가운데 치료시기를 놓쳐서 순직한 선생님의 사연은 낙도인 풍도의 생활 여건과 관계 깊은 이야기여서 더 가슴이 아프다. 지난 2000년 3월 6일 폭풍이 치던 밤 경기도 서해 바다의 작은 섬 풍도에서는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다. 풍도분교의 성인서 선생님[당시 45세]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성인서 선생님은 오전 내내 아이들을 지도하고 오후에는 새학기 업무준비로 컴퓨터에 앉아 물품구입과 학습 자료 정리를 하다가 5시 30분경 업무를 끝내고, 오랜만에 동네 사람들이 잡아 준 닭을 먹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그날따라 썰물이 나간 뒤라 배도 못 뜨고 폭풍 때문에 헬기조차 오지를 못해서 덕적도에 있는 해군 함정이 풍도 앞바다에 1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마을 사람들은 작은 보트를 갯벌에서 바다까지 밀고 나가 간신히 함정 쪽으로 전진했다. 7명의 장정이 탄 보트에 엄청난 파도가 몰아쳐 죽음과 싸우며 간신히 함정에 도착하여 환자를 올리는데, 그만 한 사람이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구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었는지라, 선생님은 인하대학교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성인서 교사는 작은 섬마을 선생님으로 3년여 동안 아이들 지도와 연구로 하루도 게으름이 없었고, 또 자신의 연마를 위해 대학원 공부까지 하는 힘든 생활이었지만, 다 큰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보약 한 번 제대로 지어 먹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훈훈한 미담이다. 안산대부중학교에 근무하는 김동선[43세] 선생님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뇌병변장애를 않고 있는 서미연 양을 위해 월요일마다 풍도까지 찾아와 방문 수업을 하고 있다.

풍도에는 중학교가 없기 때문에 풍도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안산시 대부도나 인천광역시 등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한다. 그러나 아무리 중학교에 가고 싶어도 서미연 양처럼 몸이 불편한 학생에게는 외지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안산대부중학교와 김동선 선생님이 나서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풍도를 오고가며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서미연 학생은 현재 16세로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어야 하나 장애의 몸과 육지로 통학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잦은 휴학으로 현재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러한 사연은 2008년 11월 31일 EBS TV ‘희망풍경’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처럼 어려운 삶의 조건 속에서도 철새처럼 도리도로 교실을 이동하며 공부했던 풍도분교 학생들과 선생님, 그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학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열악한 환경을 탓하며 포기하기보다는 억척스레 삶을 개척했던 그들의 향학열을 사진 한 장이 말해 주고 있을 뿐이다.

2009년 현재 풍도에는 52세대 11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전체 인구 중 80% 정도가 노인층으로, 30대에서 환갑까지 장년층이 열댓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어린이들 숫자 또한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1983년 풍도에 개척교회를 세운 김정순[54세] 목사는 “처음 섬에 왔을 때만 해도 초등학생이 21명이었고, 미취학 아동까지 합하면 30명 가까이 됐다.”면서 그 아이들만 데리고 개척교회를 시작했을 정도로 큰 힘이 됐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 목사는 ‘무엇보다 폐교가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학교라도 있어야 동네에 아이들이 보이고 그래야 사는 맛이 있게 마련이라면서 갈수록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마을에 활기가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풍도파출소분소장인 다예 아빠 임유정 씨도 “인근 유인도에서는 그나마 유일하게 학교가 있는 섬인데, 정말 큰일”이라며 걱정이 태산 같다고 하였다. 그는 “근무기간이 끝나 우리 가족이 섬을 나가는 순간에 폐교가 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섬의 중심이 죽을 것이고, 젊은 사람들은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 풍도분교장도 “풍도에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폐교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면서, 이런 식으로 나가면 학교가 없어지고 나아가 섬사람들까지 없어지게 될 것[무인도화]이라며,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2008년 7월에 풍도에는 오랜만에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7,8년 후 이 아이가 자라 풍도에서 학교를 다닐지, 아니면 육지로 나가야 할지는 풍도분교의 장래와 직결되어 있다.

[정보제공]

  • •  김수(남, 1972년생, 풍도 거주, 풍도분교 분교장)
  • •  여환선(여, 1963년생, 풍도 거주, 풍도분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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