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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B010103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삼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현우

삼천리는 원래부터 안산의 끝에 숨겨진 한적한 마을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마을 앞 장고개를 넘어 반월장터로 바로 갈 수 있었고, 학이 내려앉았다는 학좌고개를 넘으면 지금은 군포시에 포함된 둔대리를 지나 과천으로, 또 서울로도 갈 수 있었다.

수원으로 가는 길도 편해서 안산 지역에서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왜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고 안산의 다른 지역과 떨어진 숨겨진 마을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마을 주변으로 생긴 크고 작은 도로들이 마을로 오가는 길을 끊어서 일 것이다.

길과 도로는 언뜻 같아 보이지만 사람들의 삶에 새겨지는 모습은 서로 다르다. 도로는 설계하고 공사해서 금방 만들어낼 수 있지만, 길은 오랜 시간 삶의 흔적과 자취가 배어 있는 역사이므로 즉흥적으로 만들 수 없다. 특히 차량이 이동 수단이 아니었던 농경시대, 기껏해야 수레와 우마차가 교통수단이던 시절의 길들은 오로지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길로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이 땅 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 전의 모든 길들은 불도저나 대형 중장비가 아니라 사람의 필요에 의해 시간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차량의 주행 속도보다는 사람이 걷기에 편안한 것을 기준 삼아 만들어진 길들은 대체로 물길을 따라 만들어졌거나 물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졌다. 그래서 옛 길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삼천리의 길들은 모두 사람들의 왕래로 만들어진 길들이었다. 건너치미의 장고개를 넘어 반월장터로 나가는 길은 고갯길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윗삼천리 의 앞으로 난 길은 멀리 수원까지 연결된 활짝 펼쳐진 길이었고, 아랫삼천리 쪽으로는 남산뜰을 지나 남으로는 사강으로, 서쪽으로는 인천으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삼천리의 도로들은 다른 마을로 통하는 옛 길들을 끊거나 없애 버리고 새로 만들어졌다.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강원도 동해시에 이르는 국도 42호선은 안산 본오동으로 들어가는 길을 끊어 놓음으로써 새로 건설된 안산 신도시와 삼천리를 비롯한 반월동 전체를 갈라놓았다. 새로 들어서는 고속국도들 역시 삼천리 부근을 지나가면서 기존의 길들을 끊어 놓거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로 전락시켰다.

영동고속국도와 통합된 신갈-안산간 고속도로는 수도권 지역의 급증하는 교통 수요에 대처하기 위하여 2001년 개통되었는데, 이 고속도로와 1994년 개통된 안중-안산을 연결하는 서해안고속국도가 삼천리 주변을 지나간다. 특히, 팔곡 JC와 둔대 JC를 연결하는 왕복 2차선 도로는 서해안고속국도와 영동고속국도를 연결하는 도로로 2001년에 개통되었는데, 이 도로가 터미산을 가로지르면서 삼천리의 북쪽을 가로막았다. 이 도로로 인해 터미산을 돌아 넘어 반월저수지를 통해 인천으로, 서해안 지역으로 가는 길이 막혀 버린 것이다.

또한 수도권 전철 4호선의 연장 구간인 안산선이 개통되면서 윗삼천리의 여기뜰을 가로질러 철로둑을 쌓으면서 군포 쪽으로 넓고 길게 보이던 시야를 가로막았다.

도로는 빠르게 가기 위한 수단이지만 길은 천천히 가는 여정이다. 신영복 선생은 도로와 길을 대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도로는 고속일수록 좋습니다. 오로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도로의 개념입니다. 짧을수록 좋고, 궁극적으로는 제로(0)가 되면 자기목적성에 최적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순입니다. ‘길’은 도로와 다릅니다. ‘길’은 ‘길’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 발견의 계기이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도로는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기 위한 속도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기 때문에 주변 지역의 환경과 생활상을 무시하며 건설된다. 그러나 길은 목표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며, 길 주변의 마을들의 생활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지금도 삼천리 주변으로 수많은 차량들이 시속 80~100㎞의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목표일 뿐 주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삼천리가 안산에서 숨겨진 마을이 된 것은 개발을 목표로 만들어진 수많은 도로들이 마을의 전통적인 길들을 끊어 놓거나 소외시킨 결과에 다름 아니다.

[정보제공]

  • •  조희찬(남, 1930년생, 건건동 거주)
  • •  장동호(남, 1946년생, 건건동 거주, 전 안산시의회 의장)
[참고문헌]
  • 신영복,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돌베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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