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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1950
한자 趙安國
영어음역 Jo Anguk
이칭/별칭 국경(國卿)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진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성별
생년 1501년연표보기
몰년 1573년연표보기
본관 풍양
대표관직 오위도총부부총관

[정의]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국경(國卿). 아버지는 수군절도사를 지낸 조현범(趙賢範)이고, 어머니는 파성군(坡城君) 윤찬(尹贊)의 딸이다. 훈련원도정·한성부판윤 등을 지낸 조경(趙儆)[1541~1609]이 아들이다.

[활동사항]

조안국(趙安國)[1501~1573]은 1524년(중종 19) 무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선전관청선전관이 되었다. 여러 차례 시사대회(試射大會) 또는 격구대회(擊毬大會)에서 우승하는 등 명성이 높았다. 1535년(중종 30) 문관직에 발탁되어 승정원동부승지를 지냈고, 1548년(명종 3) 광주목사·종성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551년(명종 6)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재직 중 사사(賜死)된 중종 때 권신 김안로(金安老)에게 아부하였다는 이유로 탄핵되어 장단부사로 좌천되었으나, 1553년 관내의 도적을 일소한 공을 세워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전임되었다. 1555년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전라병사겸방어사로 순변사 남치근(南致勤)과 함께 나주 일대에 침구한 왜적들을 소탕하였다. 뒤에 제2차 작전에서 적에게 허를 찔려 작전에 실패하자, 이로 인하여 관직이 박탈된 채 녹도(鹿島)에 장류되었으나 1557년 장단부사에 다시 서용되었다.

1561년(명종 16) 함경남도병마절도사, 1567년(선조 즉위년) 경기도수군절도사를 거쳐 포도대장·오위장·오위도총부부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조안국은 두드러지게 뛰어난 무예로 28세 때 통정대부에 올랐고, 종성부사가 되었을 때 아버지 조현범이 회령부사로 재직하여 부자가 육진(六鎭)을 지킨다 하여 한때 명성이 높았다.

[묘소]

묘소는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풍양조씨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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