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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1949
한자 趙儆
영어음역 Jo Gyeong
이칭/별칭 사척(士惕),장의(莊毅)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진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성별
생년 1541년연표보기
몰년 1609년연표보기
본관 풍양
대표관직 한성부판윤

[정의]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사척(士惕). 아버지는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안국(趙安國)이며, 어머니는 생원 권세임(權世任)의 딸이다.

[활동사항]

조경(趙儆)[1541~1609]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제주목사를 거쳐, 1591년(선조 24) 강계부사로 있을 때 그곳에 유배되어 온 정철(鄭澈)을 우대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방어사가 되어 황간·추풍 등지에서 싸웠으나 패배한 뒤 김산(金山)에서 왜적을 물리치다 부상을 입었다. 이해 겨울 수원부사로 독산성(禿山城)에서 적에게 포위된 권율(權慄)을 돕고, 이듬해 도원수 권율과 함께 행주산성에서 대첩을 거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되었다.

행주산성의 승리로 한양을 탈환하게 되면서 도성서도포도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593년(선조 26) 『기효신서(紀效新書)』의 신진법(新陣法)을 명나라 장수 낙상지(駱尙志)의 소청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새로 편제된 훈련도감당상을 겸하고, 이듬해 훈련대장이 되었다. 그 뒤 동지중추부사·함경북도병사·훈련원도정·한성부판윤을 거쳐 1599년(선조 32) 충청병사·회령부사를 지냈다.

[학문과 사상]

무신으로 사서(史書)를 두루 통하여 고사(古事)에 밝았고, 늦게 급제하였으나 명망이 높아 사람들이 모두 대장의 재목으로 기대하였다.

[묘소]

묘소는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풍양조씨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록되고, 풍양군(豊壤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장의(莊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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