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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없는 장군의 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1532
한자 -將軍-墓
영어의미역 The Grave of General without Head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
주요 등장인물 최정걸|부인
관련지명 사리역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머리 잘린 최정걸|속적삼으로 찾아낸 최정걸의 시체

[정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서 최정걸 장군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2년 11월 9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최현목[남, 60]이 구연한 것을 이한기가 채록하여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안산』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7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다시 최현목[남, 75]이 구연한 것을 이정태가 채록하여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재수록하였다.

[내용]

예전 사리역 뒤 그러니까 현재의 안산동산고등학교 옆에 절충장군 묘(折衝將軍墓)가 있는데, 이와 얽힌 이야기이다. 병자호란 때 장군 최정걸(崔挺傑)이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仁祖)[1595~1649]를 구하기 위하여 집을 떠나게 되었다. 최정걸은 떠나기 전날 밤 부인에게 속적삼을 달라고 말하였다. 부인이 “그건 무얼 하시려우?” 하니까 최정걸이 “만약에 내가 전사를 했을 경우에 무얼 보고 나를 찾겠소?” 하였다. 사람은 머리가 없다면 도저히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정걸이 남한산성에서 죽은 후, 최정걸의 시체를 찾으려고 하였는데 도저히 찾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옷을 모두 벗겨 보니 여자 속적삼을 입은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속적삼을 보고 최정걸의 시신을 수습하여 현재의 산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최정걸의 산소가 있는 산에는 나무가 무성하였다. 산 아래에는 한 20여 호가 살고 있었는데, 아무도 산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신성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신 따위를 믿지 않는 한 사람이 “요즘 세상에 그런 게 다 뭐야” 하면서 산을 거의 100㎡ 정도 개간하여 양계장을 지었다. 그런데 양계장 안에 닭을 넣으면 죽고 넣으면 죽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은 두 손을 들고 떠나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최정걸의 산소가 있는 산은 괭이 자국 하나 없이 잘 보존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마을 사람들이 산의 나뭇가지 하나만 꺾어도 화를 입는다고 믿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머리 없는 장군의 묘」의 주요 모티프는 ‘머리 잘린 최정걸’과 ‘속적삼으로 찾아낸 최정걸의 시체’이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전사한 최정걸 장군에 대한 일화를 담은 전설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재* 추남번전투에서적과맟서다전사해가신최장군님이시어편히쉬소서삼가머리숙여고인의명복을비옵니다모당신이가신그길후손들과함께빛내어가리라묵념 2011.05.05
재* 남한산성에서적과배치하며숨저가신최장군님이시어편히쉬소서명복을빕니다 201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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