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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성황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1462
한자 君子城隍堂
영어의미역 Gunja Village Guardian Shrine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지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유적
건립시기/연도 조선 초기
관련인물 경순왕|부인 안씨|장모 홍씨
소재지 주소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산 22-3지도보기

[정의]

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 경계에 위치한 군자봉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신당.

[개설]

군자성황당은 마을을 지켜 주는 서낭신을 모셔 놓은 신당으로 매년 음력 10월 초 3일에 군자봉 정상에서 서낭신을 맞이하는 민간신앙유적이다. 서낭신을 맞이한 후 산 아래에 있는 당(堂)에서 김부대왕(金傅大王)[경순왕]을 비롯한 신격(神格)들을 위하는 굿을 벌인다. 군자성황제는 고려 초기부터 거행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며, 신라 마지막 왕인 제56대 경순왕과 관련된 유래가 있다.

경순왕군자봉에 이거하면서 안씨와 생활하다가 개성으로 가서 서거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모르고 기다리던 안씨는 안산 땅에서 살다가 고혼이 되었다. 송나라 사신으로 서희 장군이 출행하게 되었는데 그 때 안씨의 영혼이 나타나 많은 기행이적(奇行異蹟)으로 그의 행차 길을 도와주었다. 이에 서희 장군은 안씨의 현령(顯靈)과 약속하기를 안산 군자봉경순왕 영정을 모시고 소원당을 지어주기로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에 인근의 주민들이 해마다 음력 2월에 서낭신인 경순왕과 안씨 부인, 그리고 장모 홍씨의 영정을 모시고 인근의 마을로 내려와 마을제를 지내왔다. 10월에는 군자봉 정상에 있는 소원당 또는 성황당에서 햇곡식으로 마련한 제물과 어물을 준비해 성황굿을 행했다고 하며, 그것이 지금의 성황제로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군자성황당은 1530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안산군조 사묘(祠廟) 편에, “성황사가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군의 서쪽 21리에 있고, 다른 하나는 군의 서쪽 32리에 위치한다.”고 하였다. 전자는 군자산(君子山)의 성황당을, 후자는 잿머리성황당을 가리키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1481년(성종 12)에 완성된 『여지승람(輿地勝覽)』을 정정하여 1486년(성종 17)에 발간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다시 증보하여 만든 것이므로 두 곳의 성황당이 조선 초기에 이미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형태]

군자봉은 무속신앙이 크게 발달된 영산으로서, 조선시대에는 성황당이 있었으나 현재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와 제단만 남아 있다.

[의례]

성황제는 제례의식을 시작으로 하여 농악과 함께 북·장구·바라·호적 등을 이용하여 독특한 굿을 벌였다. 굿이 끝난 후에는 성황기를 앞세우고 인근 마을 56리 밖까지 3개월간 유가를 돌며 재해 퇴치와 안녕을 기원하였는데, 이때 마을 주민들도 한데 어울려 춤을 추며 여흥을 즐겼다고 한다.

[현황]

군자성황제는 1993년 9월, 제8회 경기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입상하였다. 그 후로도 매년 10월이면 경순왕과 안씨, 친정어머니인 홍씨 부인 혼령에게 제를 지내오고 있으며, 시흥·안양·안산 지역은 물론 전국의 무속인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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