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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균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746
한자 洪均庇
영어음역 Hong Gyunbi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계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평민
성별
본관 남양

[정의]

고려 후기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인물.

[활동사항]

홍균비남양홍씨(南陽洪氏)로 고려 후기 삼별초의 대몽항쟁 시기에 남양(南陽)[현 경기도 안산 지역]에 살았던 인물이다. 1270년(고려 원종 11) 5월 임유무(林惟茂)가 제거되면서 100여 년간 이어져 왔던 무인정권은 막을 내리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왕정복고와 더불어 몽고와 강화(講和)가 이뤄져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하지만 삼별초가 이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삼별초군은 본래 몽고군과의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는데 몽고와의 강화가 이뤄진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정부에 의해 몰락당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대몽항쟁을 전개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이에 삼별초는 후자를 택하였다.

원종이 상장군 정자여(鄭子璵)를 파견하여 삼별초를 설득해 개경으로 돌아오도록 하였는데 삼별초는 이를 거절하였다. 원종김지저(金之氐) 장군을 강화도에 보내면서 삼별초가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삼별초를 없애버리고 그들의 병부를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강화도에 이른 김지저 장군이 왕명을 전하였으나 삼별초를 이끌고 있던 배중손(裵仲孫)은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김지저 장군이 삼별초의 병부를 가져가자, 배중손은 강화도에 나름대로의 정부를 세우고 몽고에 굽히지 않고 맞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삼별초 군사만으로 강화도 전 해안선을 완전히 봉쇄할 수 없었고, 이에 불안을 느낀 일부 군관민의 탈출이 이어졌다. 이에 삼별초군은 새로운 근거지로 진도를 선정하고 남행을 결행하였다. 이때 몽골군은 삼별초를 추격하며 서해안 연안의 섬을 약탈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도(大阜島)[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도 몽골군이 들어와 노략질을 하였다.

이에 분개한 홍균비홍택(洪澤)은 섬 주민들을 모아 대항하여 적지 않은 수의 몽골군을 죽였으나 군사를 거느리고 온 수주부사(水州副使) 안열(安悅)에 의해 곧 평정되었다. 후에 몽골 장수 탈타아가 황제의 명을 받아 반란을 음모한 자들을 국문하였는데 이때 당성(唐城)[경기 남양을 지칭함] 사람 홍택을 베어 죽이고, 홍균비 등에게는 장형(杖刑)을 내리고 역리(驛吏)에 충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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