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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712
한자 崔挺傑
영어음역 Choe Jeonggeol
이칭/별칭 최세걸(崔世傑),충장공(忠壯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준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성별
생년 1587년연표보기
몰년 1636년연표보기
본관 양주
대표관직 용양위부호군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양주(楊州). 이명은 최세걸(崔世傑)이다. 할아버지는 최홍주(崔弘澍), 아버지는 진사 최정(崔淨),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주부 윤극일(尹克一)의 딸이다.

[활동사항]

최정걸은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궁술과 기마에 능하여 어려서부터 충효의 덕목을 갖춘 덕장의 자질을 보였다. 1604년(선조 37) 부친상을 치른 뒤 무과에 급제하여 중앙군인 용양위부호군[종4품]을 지냈다. 이후 안산 사동 감자골로 낙향하여 모친을 봉양하던 중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50세의 나이임에도 단신으로 왕을 지키기 위해 남한산성에서 종군하였다. 전국의 근왕병이 고립된 인조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으나 청군을 물리치고 남한산성에 입성한 경우는 최정걸이 유일하였다.

김이건(金履健)의 충신사적(忠臣事蹟)에 의하면 당시 최정걸이 청군 7명의 수급을 베어 인조에게 바쳤는데, 인조가 어주를 하사하며 공을 치하했다고 한다. 같은 해 12월 29일 청군과의 전투에서 많은 적군을 사살하였다. 조정의 여론이 청군의 강대한 기세에 눌려 강화로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튿날 다시 적진으로 돌진하여 분전 끝에 전사하였고 노비 극산(克山)이 시신을 수습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 산우물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인조최정걸의 무공을 높이 평가하여 병조참판을 증직하고 시호 충장(忠壯)을 내렸으며 향리에 예관(禮官)을 보내어 후히 장사 지내도록 하여 광주군 성곡면 사리[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안장하였으며, 정려(旌閭)와 사패지(賜牌地)를 내려 주었다.

[참고문헌]
  • 『안산시사』 (안산시사편찬위원회, 1999)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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