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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534
한자 金漑
영어음역 Gim Gae
이칭/별칭 선택(宣澤),평호공(平胡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03년연표보기
몰년 1484년연표보기
본관 안산
대표관직 판중추원사

[정의]

조선 전기 안산에 살았던 문신.

[가계]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선택(宣澤). 아버지는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진 김정경(金定卿)이며, 아내는 송환(宋奐)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개는 1422년(세종 4) 음직(蔭職)으로 남부녹사(南部錄事)에 임명된 뒤 세자우시직(世子右侍直)을 거쳐 전농시주부, 대호군 겸 판통례문사(大護軍兼判通禮門事), 상서원소윤 등을 역임하였다. 1455년(세조 1) 첨지중추부사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면서 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1458년 중추부사를 지냈고, 1459년 사은사 김세민(金世敏)의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9년 9월 살곶이들[전곶평]에서 진법(陣法)을 행할 때 재주가 돋보여 가정대부에 이르렀고, 1461년 자헌대부에 오르면서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했다. 이어 첨지중추부사, 지중추원사 등을 지냈다. 1465년 원각사제조(圓覺寺提調)로서 원각사의 조성을 지휘하였다. 1467년 의정부좌참찬에 제수되었으나 대사헌 양성지(梁誠之) 등의 반대로 부임하지 못했다.

1468년 숭록대부에 올랐으나 사위 조경치(曺敬治)가 남이(南怡)의 옥사에 연루되었다 하여 파직되었다. 1470년(성종 1) 다시 서용되어 상호군, 의묘조성제조(懿廟造成提調), 판중추원사를 거쳐 공혜왕후(恭惠王后)의 산릉도감과 선공감제조를 겸했다. 김개는 용모와 거동이 아름답고 해서(楷書)를 잘 썼으며 성품이 정교하고 주고받는 것에 민첩해 나라의 제반 공사가 있을 때 감독을 많이 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하서면 봉황암(鳳凰庵)[현재 북한 지역으로 광복 전 행정구역] 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평호(平胡)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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