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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530
한자 姜希孟
영어음역 Gang Huimaeng
이칭/별칭 경순(景醇),사숙재(私淑齋),운송거사(雲松居士),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진산군(晉山君),문량공(文良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24년연표보기
몰년 1483년연표보기
본관 진주
대표관직 의정부좌찬성

[정의]

조선 전기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운송거사(雲松居士)·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 할아버지는 동북면순무사(東北面巡撫使)를 역임한 강회백(姜淮伯), 아버지는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 처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안숭효(安崇孝)의 딸이다. 형은 인순부윤(仁順府尹)이자 화가인 강희안(姜希顔)이며, 이모부가 세종이다. 숙부 강순덕(姜順德)에게 입양되었다.

강희맹이 안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안산 출신인 안숭효의 딸을 배필로 맞으면서부터였다. 또 잠시 벼슬에서 물러나 안산 가까운 금양(衿陽)[지금의 경기도 시흥, 경기도 광명, 서울특별시 금천]에 퇴거해 농사일을 연구하기도 하였으며, 60세로 세상을 떠난 뒤 안산 즙천리에 묻혔다.

[활동사항]

강희맹은 12살 때 승려인 성상(省桑)에게 수학하였다. 1442년(세종 24)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447년 문과별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종부시주부를 거쳐 1450년(문종 즉위년) 예조좌랑, 돈녕부판관 등을 지냈고, 이어 집현전직전과 병조정랑을 지냈다. 1455년(세조 1)에는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판전농사사, 예조참의, 첨지중추부사, 세자보덕, 예조참판, 이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463년 진하부사(進賀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1464년에는 부윤으로서 어제구현재시(御製求賢才試)에 2등으로 합격하고,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3등으로, 등준시(登俊試)에 2등으로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이 되었으며, 지성균관사겸도총관,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468년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봉되어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졌다.

1471년(성종 2)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봉되었다. 같은 해 지춘추관사로서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예종실록(睿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73년 병조판서가 되고 이어서 판중추부사, 이조판서, 판돈령부사, 우찬성을 역임하였으며 1482년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다.

강희맹은 실록을 비롯하여 『국조보감(國朝寶鑑)』, 『경국대전(經國大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동문선(東文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志勝覽)』, 사서삼경의 언해 등 국가적인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강희맹은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특히 송죽도와 산수화를 잘 그렸다.

[학문과 사상]

강희맹은 국가의 전장제도(典章制度)를 성문화하고, 전래된 문화적인 업적을 정리하는 국가적인 사업에 줄곧 참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학문은 도학의 세계를 새로 개척하거나 연구하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는 이미 쌓아 두었던 지식을 실생활에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분류하고 정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강희맹의 실용적이고 경세적(經世的)인 학문 정신은 농서인 『금양잡록(衿陽雜錄)』에 잘 드러나 있다.

[저술 및 작품]

시문집으로 『사숙재집(私淑齋集)』이 있다. 문집 속에는 국토의 승경(勝景)이나 누정(樓亭)을 노래한 「호남형승십일절(湖南形勝十一絶)」·「저도십영(楮島十詠)」·「청안팔경(淸安八景)」·「담담정십이영(淡淡亭十二詠)」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기타 벼슬에서 물러나 금양에서 지낼 때 현지의 농사에 관한 것들을 수집하고 정리한 『금양잡록』과 현지에서 보고 들은 실생활의 내용을 엮은 『촌담해이(村談解頤)』 등의 저술이 있다. 또 할아버지, 아버지, 형의 시 작품들을 모아 『진산세고(晉山世稿)』를 편찬하였다. 회화 작품으로 현재 일본의 오구라문화재단에 소장되어 있는 「독조도(獨釣圖)」가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 산2번지[하상로 59]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03.20 금양 위치 수정 [가계] 금양(衿陽)[지금의 경기도 시흥] -> 금양(衿陽)[지금의 경기도 시흥, 경기도 광명, 서울특별시 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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