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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494
한자 星湖僿說
영어음역 Seonghosaseol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이익|이병휴|정인보|안정복
저자 이익
편자 이병휴|안정복
저술연도/일시 1760년대연표보기
편찬연도/일시 1776년연표보기
간행연도/일시 조선 후기|1929년[영인본]연표보기
권수 30권[서울대학교규장각·재산루]|30권[일본 도요문고]|10권[문광서판본]
책수 30책[서울대학교규장각·재산루]|30책[일본 도요문고]|5책[문광서판본]|2책[국립중앙도서관]
사용활자 필사본|신활자본
간행처 문광서림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재산루(在山樓)|서울대학교 규장각|일본 도요문고|와세다대학교
소장처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산 60-1[반포대로 201]|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 56-1[관악로 1]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안산에서 활동한 이익의 문집.

[개설]

경기도 안산 첨성리에서 성장한 이익(李瀷)[1681~1763]은 조선 후기 실학의 거두로 일생 동안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성호사설(星湖僿說)』이익이 평소 독서를 통해 습득한 지식들을 가지고 83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논설로 정리 두었던 것을 제자와 후손이 정리한 것이다. 현전하는 저술의 규모는 30책이지만 저자가 처음 남겨 놓은 것은 이보다 더 규모가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설’은 일종의 잡저를 의미한다. ‘사(僿)’란 ‘세쇄(細鎖)’하다는 의미로 이익 자신이 겸사로 붙인 제목이다. 그렇지만 사설의 내용은 이익 스스로도 밝혔듯이 시무에도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고, 경사(經史)는 물론 경제·군제·시문·지리·관제·역산(曆算)·예수(禮數)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분야에 걸쳐서 그의 해박한 지식과 비판이 담겨져 있다. 이는 이익의 학문적 넓이와 견문의 심천, 고증의 명확함을 잘 보여주는 측면이라 여겨진다.

[편찬/발간 경위]

이익은 40세를 전후해서 사설을 두고, “견문한 것들 중에 생각나고 의심나는 내용들을 적어 두었던 것들”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즉 40년 동안 경서들을 탐독하던 가운데, 그리고 집안 가족들의 교육, 문하생들과의 질의응답 중에 생각이 미친 부분들을 메모 형식으로 기록해 두었던 것이 쌓여서 팔순에 가까이 왔을 때 후손들이 등전(謄傳)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776년 이익의 조카 이병휴(李秉休)가 중심이 되어 30책으로 일단 정리하였으나 당시 『성호선생문집』이 그랬듯이 간행되지는 못하였다. 이어 순조 대에 30책으로 전하는 재산루장본(在山樓藏本)이 등사된 것으로 보아 이때 1차적인 간행이 있었으나 그 뒤에는 간행되지 못하였다.

1915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안정복(安鼎福)이익이 생전에 정리한 『성호사설유선』을 상·하 2책으로 인쇄하였고, 이후 『성호사설유선』이 알려지면서 『성호사설』에 관심이 높아져 1929년에 문광서림에서 신활자본으로 영인하였다. 이 영인본은 정인보(鄭寅普)가 교열해 선장본[5책]과 양장본[상하 2책]으로 동시에 출판했는데, 이 대본도 『성호사설유선』이었다.

그 뒤 1967년에 이익의 조카 이병휴(李秉休)의 후손인 이돈형(李暾衡)이 소장한 30책 원본의 『성호사설』을 경희출판사에서 상하 2책으로 영인, 출판함으로써 학계에 널리 보급되었다. 번역본으로는 1977년 동화출판공사에서 이익성(李翼成)이 부분적으로 번역한 『성호사설』이 있는데, 이것은 1981년 삼성출판사에서 『성호사설』로 재출판하였다. 그리고 1977~1979년에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전문을 번역한 『국역성호사설』을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필사본은 국립중앙도서관과 재산루(在山樓), 서울대학교 규장각, 일본 도요문고, 일본 와세다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중 국립중앙도서관본은 내용의 일부가 다른 본과 약간 다르며, 일부만이 전하는 낙질인데, 국립중앙도서관 측의 해제에 의하면 이익 자신의 자필 원고로 추정하고 있다. 본서의 저본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다.

[형태]

서울대학교 규장각본과 재산루본이 완질본으로 판단되는 30권 30책 분량으로 되어 있다. 일본 동양문고에서 전하는 사본은 30권 30책이고, 일본 와세다대학본 30권 17책,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판본이 다른 2책이 전하고 있다. 문광서판본(文光書板本)은 10권 5책이다. 완질본의 형태는 국립중앙도서관본이 전형인 것으로 판단된다. 필사본으로는 낙질 형식으로 여러 질이 전하고 있다. 근대에 들어와 신활자본으로 간행된 낙질본도 권과 책을 달리하여 전하고 있다.

[구성/내용]

국립중앙도서관본에 의하면, 책의 구성은 천지문(天地門), 만물문(萬物門), 인사문(人事門), 경사문(經史門), 시문문(詩文門)의 다섯 가지 문(門)으로 크게 분류해 총 3,007편의 항목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그러나 분류가 엄정하게 되지 못하여, 저자가 생존 시에 제자 안정복이 이의 재분류와 정리를 자청해 『성호사설유선』을 편찬하였다.

『성호사설유선』에는 중복되는 것은 합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빼서 총 1,332편의 글을 수록하였다. 이에는 ‘문’을 ‘편’으로 바꾸고 ‘편’ 아래의 구분으로 문을 설정했으며, 만물문을 경사문 다음에 두었다. 다섯 편의 문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천지문

천문과 지리에 대해 논술한 223항목의 논문이 실려 있다. 즉 우주 속의 자연과 자연 현상인 태양·별·달, 바람·비·이슬·서리·조수, 역법·산맥·강역 등에 관한 내용이 그것이다.

2. 만물문

생활에 직접·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368항목을 논문으로 서술하고 있다. 즉 의복·먹거리, 농사와 양잠, 화초·가축, 그리고 화폐·병기·도량형·서양의 기기 등에 관한 것들이 실려 있다.

3. 인사문

정치·경제·사회·제도, 학문·사상·인물·사건 등등을 논술한 990항목의 논문이 실려 있다. 예를 들면, 정무의 중추기관을 비변사에서 의정부로 되돌려야 한다는 논지, 서얼 차별을 폐지할 것과 과거 제도의 개선안, 지방 제도의 개혁안, 토지 제도의 개혁안, 화폐 제도와 환곡 제도의 폐지, 상평창 제도의 부활 등을 통해 중농정책을 펼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노비 제도의 개혁안, 불교와 도교 및 민간신앙에 대한 견해, 혼상제와 관련하여 폐습적인 문제의 개선책 등을 논술하고 있다.

4. 경사문

육경사서(六經四書)와 우리나라 및 중국의 역사서에 잘못 해석된 내용과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실은 논설,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붙인 1,048항목의 논문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역사 해석에서 정치적 사건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앞세우는 것을 비판하고 당시의 시세 파악이 중요함을 주장하였다. 또한 역사 서술에서 신화 내용을 비판하는 근대적인 역사관을 갖는 측면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5. 시문문

시와 문장에 대한 평가로서 378항목의 논문이 실려 있다. 중국의 시문이 3/2 이상이나 차지하고 있어서 그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드러내 주고 있다. 특히, 시의 역사, 형식 등에 관한 논의라든가 각 시대의 위대한 인물들의 시를 통해 그 인물의 내면세계를 평가하는 혜안을 드러내고 있다. 그 외에 시체·문체·운율에 관한 논지와 서체·필법에 관한 폭넓은 견해도 드러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혹자는 『성호사설』에 담긴 사상을 하나의 호수에 비겨 말하기도 한다. 즉 류형원(柳馨遠) 이래 발전되어 온 실학이 이익의 저술에 이르러 모두 통합되었다가 그 뒤 각 분야의 전문학자들에 의해 더욱 분화되어 심층적으로 연구되었다는 것이다. 『성호사설』은 또한 이익의 사회개혁안인 『곽우록(藿憂錄)』의 내용과 깊은 관련을 가진 저서로서, 『성호사설』에 담긴 내용을 현실 개혁안 중심으로 다시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곽우록』이다. 그러므로 이익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는 『성호사설』이 『곽우록』보다 더 중요한 기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성호사설』은 기록을 내용별로 구분하여 싣는 유서학(類書學)의 저술 또는 백과전서적인 책으로서, 서양의 새로운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사물과 당시의 세태 및 학문의 태도에 대하여 개방적인 자세로 파악한 실학서이다. 특히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도 『성호사설』의 형식을 따라 천지편·인사편·경사편·만물편·시문편 등 5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이 책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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