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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중열(仲悅). 아버지는 예조참판 강징(姜瀓),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 처는 나주김씨(羅州金氏)이다. 동생으로 내자시판관 강의(姜儀), 지제교 강억(姜億), 해주목사 강위(姜偉)가 있다. 나주김씨와의 사이에 자녀를 두지 못해 동생인 강의의 아들 강응서(姜應瑞)를 입양했다. 강희는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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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산에서 거주한 열녀. 남편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서 음직으로 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사헌부감찰·신창현감을 지낸 강희(姜僖)[1492~1539]이다. 자녀를 두지 못하여 강의(姜儀)[강희의 동생]의 아들 강응서(姜應瑞)를 입양하였다. 강희의 아내 나주김씨는 남편이 죽자 6년간 상복을 입었으며, 평생 빗질을 하지 않았다. 제사 때를 맞이해서도 초상 때와 같이 슬피 통곡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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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군내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남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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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대월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쪽으로 약 1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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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마유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쪽으로 약 1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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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초지량영를 총괄하던 무관 직책. 조선시대 안산 일대 해안 경비를 위해 초지량영(草芝梁營)를 설치하였고, 이곳을 관장하는 직책으로 수군만호 1인을 배치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비롯하여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중종 대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조선 후기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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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후(子厚). 증조할아버지는 찰방(察訪)을 지낸 박여헌(朴黎獻)이고,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역임한 박충생(朴忠生)이다. 아버지는 도승지를 지낸 박창(朴敞)이며, 어머니는 신임(愼恁)의 딸이다. 박종부(朴宗阜)[1600~1645]는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장원 급제한 뒤 증광문과에 갑과 방안(榜眼)[전시의 갑과에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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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열녀. 이소사는 경기도 안산에서 생활하였다. 인조 때 정언, 헌납, 지평, 이조좌랑, 교리 등을 지낸 박종부(朴宗阜)[1600~1645]의 첩으로 출가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슬픈 나머지 음식을 먹지 않다가 장례를 치른 후에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열행(烈行)이 전해지자 나라에서 정문을 세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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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 조선시대 통신 수단의 하나였던 봉수는 불을 이용해 위급한 상황을 알리던 시설이었다. 평시에는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적이 국경에 가까이 오면 셋, 국경을 침범하면 넷, 교전 상태에 들어가면 다섯 개의 횃불이 피어올랐다. 봉수의 간선은 직봉(直烽)이라 하여 동북은 경흥, 동남은 동래, 서북 내륙 지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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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북방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하지만 이때는 안산군 관할이 아닌 광주군 관할이었다. 이후 1906년(고종 43)에 반포된 칙령 제49호 「지방 구역 조정 건」에서 처음으로 안산군 소속으로 등장하였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북방면의 호적에 편입된 호(戶)는 317호로 나타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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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성곶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하지만 이때는 안산군 관할이 아닌 광주군 관할이었다. 이후 1906년(고종 43) 반포된 칙령 제49호 「지방 구역 조정 건」에 따라 처음으로 안산군 소속으로 등장하였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성곶면의 호적에 편입된 호(戶)는 328호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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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효자. 신용남(申龍男)은 지금의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서 태어나 목동으로 생활하였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부모를 모시는 데 평생 동안 정성을 다하였다. 열다섯 살 때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올리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회생시키는 등 효행이 지극하였다. 효종 때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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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세계나 본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다만 후손들이 안산안씨(安山安氏)의 시조로서 받들고 있다. 사위는 이읍(李浥)이다. 안자유는 1335년(충숙왕 4) 상호군(上護軍)으로서 원나라에 다녀왔다. 1339년(충숙왕 복위 8)에 일어난 조적(趙頔)의 난으로 충혜왕이 원에 불려가 조사를 받을 때 시종한 공으로 1342년(충혜왕 복위 3) 6월 1일 군부판서(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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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안산 지역에서 남편을 잘 섬기고 절개를 지킨 아내. 열녀는 위기에 처하였을 때 죽음으로써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남편이 죽은 후 개가하지 않고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가리키며, 열부(烈婦)·절부(節婦)·절녀(節女)·정녀(貞女)로도 쓰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임금의 유혹과 강압을 물리치고 남편을 위해 정절을 지킨 도미(都彌) 아내의 이야기와, 자신의 늙은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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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와리면을 소개하는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쪽으로 약 1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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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월곡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하지만 이때는 안산군 관할이 아닌 광주군 관할이었다. 이후 1906년(고종 43)에 반포된 칙령 제49호 「지방 구역 조정 건」에 따라 처음으로 안산군 소속으로 등장하였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월곡면 호적에 편입된 호(戶)는 351호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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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열녀. 이원발의 아내 전주최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생활하였다. 이원발(李元發)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남편을 대할 때에도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영조 대에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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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잉화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쪽으로 약 1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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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기도 안산의 역사. 안산 지역은 고려 940년(태조 23) 이래 ‘안산’이라는 지명이 사용된 후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이숙번 등에 의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지역이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반월신도시 개발과 반월공단, 고잔신도시 조성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려 말 1390년(공양왕 2) 경기도가 좌·우도로 분리될 때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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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의 인문환경 및 자연환경을 비롯하여 지역 정보에 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책. 전 근대 사회에서 특정 지역의 정보를 손쉽게 알 수 있는 자료로는 지리지와 읍지가 대표적이다. 지리지는 전국을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편찬한 것이고, 읍지는 각 군현 단위로 편찬한 것이다. 지리지를 전국 지리지라고 한다면, 읍지는 군현 단위의 지리지라고 할 수 있다. 전국 단위의 대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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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토공으로 상납하던 특산물. 지초는 지혈(芝血), 자근(紫根), 자초(紫草)라고도 하며, 개지치·갯지치·반디지치 등의 종류가 있다. 뿌리는 자초·자근이라고 하는데, 화상·동상·습진 등의 약초로 쓰이며, 자색 염료로도 쓰인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토공(土貢)으로 지초를, 약재로는 연밥을 상납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조선 후기 영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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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초산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북쪽으로 약 6㎞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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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수군만호가 주둔하였던 영. 초지량영은 조선시대 중요 해안 요충지의 방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비롯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기록이 실려 있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까지는 초지량영으로 기록되어 있다가, 이후 자료에는 초지진으로 나타난다. 『세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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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수군만호가 주둔하였던 영. 초지진은 조선시대 중요 해안 요충지의 방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비롯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기록이 실려 있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까지는 초지량영으로 기록되어 있다가, 이후 자료에는 초지진(草芝鎭)으로 나타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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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안산 지역에서 부모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한 자녀. 효(孝)는 예로부터 백행(百行)의 근본으로 강조되었으며, 가정질서의 기본이 됨은 물론 국가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되었다. 효에 대하여 『소학(小學)』에서는 ‘부모를 지성으로 섬기는 것’이라 하였고, 『논어(論語)』에서는 ‘예(禮)에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또한 『효경(孝經)』의 첫 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