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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을 찾는 사람들 - 고승호 소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D020103
한자 보물선을 찾는 사람들 - 高升號 소동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영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그 일확천금의 꿈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신기루 같은 꿈에 자신의 인생을 탕진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는 그 꿈을 이루기도 한다. 어릴 적 읽었던 ‘보물섬’ 이야기의 환상은 문학 속에서뿐만 아니라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꾸는 모든 현대인들에게는 달콤한 유혹과도 같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에 주둔했던 일본군이 미군의 공격으로 패망 직전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약탈했다고 알려진 각종 보물들을 미쳐 일본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은닉했다고 알려지면서, 지금 필리핀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보물 사냥꾼들로 북적이고 있다. 우리나라에 주둔했던 일본군 역시 패망 직전 우리나라 여기저기에 약탈한 금괴 등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나름대로 신뢰할 만한 증언과 보물지도, 그리고 최첨단 탐사장비까지 갖추고 대한민국 바다와 산, 땅속을 파헤치며 일확천금을 향한 보물사냥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보물선 소동은 1999년에 동아건설이 한국해양연구원[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용역을 주어,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군함인 5,800톤급 돈스코이(Donskoi)호[추정]의 탐사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돈스코이호에 최대 150조 원 상당의 금괴가 실렸다는 소문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것이다. 그러나 70여 억을 투입된 탐사작업은 2004년 말 동아건설이 부도나면서 중단됐다.

그러나 일확천금을 꿈꾸는 보물사냥꾼을 설래게 한 이 보물선 소동은 곧이어 고승호(高升號)로 이어졌다. 영국 선적의 고승호는 길이 72.6m, 무게 2,134t급으로, 1894년 당시 중국측에 임대되어 청국군 1,400여 명과 야포 12문, 대량의 군자금을 싣고 중국을 떠나 인천 앞바다로 들어오던 중, 풍도해전에서 이기고 돌아가던 일본 순양함 나나이[浪速]호의 눈에 띄었다. 일본군은 고승호를 납치하여 일본으로 끌고 가려 했으나 청군의 격렬한 저항이 계속되자 어뢰를 발사하여 6월 25일 15시경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율도 남서쪽 약 2㎞ 앞바다에 침몰시켰다.

당시 일본군은 영국인 선원만 구제하고 청병은 그대로 수장시켰다고 한다.

일제는 한반도 점령 기간인 1925년부터 1940년까지 고승호를 수차례 인양하고자 했으나 기술 부족으로 실패하였다.

이런 사실은 1935년 2월 24일자 『동아일보』에도 보도되었다. 그 후 1979년 6월 15일 청주에 거주하는 오승환이라는 사람이 인천 항만청에 고승호 매장물 발굴신청을 하였는데, 오 씨는 당시 이행보증금 백만 원을 납부하고 약 3개월간 인양작업을 하였지만 겨우 철제앵글 몇 개와 납덩어리 2㎏ 정도만 인양하였을 뿐이다.

또 1990년부터 고승호 발굴에 나선 건설업자 차모 씨[67]가 1998년 관계기관에 발굴 승인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발에 그친 적도 있다. 차씨의 사연은 1999년 2월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 주간』에도 소개되었으며, KBS 1TV의 ‘클로즈업 오늘’과 MBC 스페셜 ‘보물사냥’ 등에서 방송했다.

2001년 7월 31일 관광이벤트사 골드쉽㈜은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율도 남서쪽 2㎞ 지점 해저 20m에서 청나라 보물선 고승호로 추정되는 배에 대해 발굴작업을 벌여 뻘에 묻힌 선체 앞부분에서 은화 및 은괴 각 6점, 금·은수저 7점과 소총, 아편 파이프 등 각종 유물을 발굴했다고 발표하였다.

당시 일간지들은 수천억 원대의 은괴를 실은 채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한 청나라의 고승호로 추정되는 선박에서 최근 길이 120㎝의 소총 3정, 동전, 도자기 등 유물 10여 점을 발굴했다고 법석을 떨었다. 이때 발굴팀은 해저에서 침몰한 선체를 발견했고 관계기관에서도 이의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어 진짜 고승호인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조심스런 보물선 수색작업을 보도하기까지 하였다. 이 때문에 문화재청은 그해 7월 보물선으로 거론되는 중국 청대의 고승호(高昇號)가 문화재로서 발굴할 가치를 지녔는지 여부를 심사하기도 했다[『중앙일보』 2001. 7. 23].

2002년 1월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하 인천해양청]에서 발굴승인을 얻은 골드쉽은 3차례 탐사작업을 벌여 620여 점의 유물을 수거하였다. 당시 문화재청은 7월 26일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발굴유물을 고증, 고승호 침몰과 동시대의 것으로 ‘근대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했다. 이는 인천해양청이 발굴승인을 내주기 전, 승인 후 발굴될 유물이 문화재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문화재청에 의뢰키로 한 사전협의에 따른 것[조건부 승인]이었다. 현재 고승호에서 건진 유물은 인천시립박물관에 위탁 보관 중에 있다고 한다.

이처럼 청일전쟁 때 일본군에 의해 침몰된 것으로 알려진 고승호에는 말발굽 형태의 은괴와 멕시코제 은화[당시 국제화폐] 등 모두 600t[시가 1,100억 원]의 은이 실려 있었다고 전한다. 만일 인천 앞바다에서 인양된 선체가 고승호임이 확인된다면 은괴 등 유물의 보물적인 가치를 떠나 새삼 남의 나라 바다에서 일어난 청일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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