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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C010401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민

하루의 시작은 언제일까? 자정을 넘어서라는 답변은 정답은 아니다. 아마도 하루의 시작은 어둠이 가시는 때부터이리라. 우리는 흔히 닭울음 소리가 들리고, 새 아침을 준비하려 잠에서 깨어 이불 속을 나서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하루의 시작을 상상한다.

그러나 도시의 하루는 그러한 상상을 무색하게 한다. 전기[제품]의 발명으로 24시간 빛이 환하고, 그 불빛 아래에서 야간 노동을 자주 하는 사람에게는 이 같은 상상은 도무지 쓸모가 없다. 현대는 하루의 경계를 없애고 오직 시간 기계[시계]만이 그 경계를 보여주는 시대이다. 원곡동의 평일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일용직 건설 노동자 시장을 가봐야만 한다.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협동길이나 주택사거리 지역, 국경없는 거리의 안산역 쪽 입구에 가보면 새벽부터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하루의 일을 찾아 모여든다.

대부분이 나이 든 조선족 동포나 중국인들이다. 이곳에서 기다리면 그날의 건설 공정에 필요한 사람들을 뽑는데, 뽑힌 사람은 대기한 차에 몸을 실어 건설 현장으로 간다. 일을 공친 사람들은 말없이 그곳을 뜬다. 그에게는 다음날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하루가 된다.

아침 7시가 되면, 안산역 건너편이나 주택사거리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모여든 사람은 시내버스나 비상등을 켜고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탄다. 바로 인근에 있는 반월공단이나 시화공단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다. 공장의 근로시간은 대체로 오전 8시에 시작하므로 이 시간에는 출근을 해야 한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간단하게 먹을 음식이나 담배를 팔기 위하여 부지런한 가게 주인들은 벌써 상점을 열기 시작한다. 건너편 안산역에는 서울이나 수도권에 직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출근하기 바쁘다. 9시부터가 업무 개시이지만, 통근거리와 시간을 감안하면 출근을 서둘러야 한다.

8시와 9시 사이가 되면 동네는 잠시 한적하다. 다른 동네 같으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등교로 시끄럽지만, 아이들이 별로 없는 이 동네는 조용하다. 다만 저쪽으로 어젯밤 철야근무를 한 동남아시아 이주 노동자가 피곤함과 아침의 추위로 어깨를 움츠리고 잠시의 휴식을 위하여 자신의 거처로 자리를 옮기고 있을 따름이다.

9시가 지나면 새로운 사람들이 움직인다. 바로 다른 지역에 외출하는 사람이나, 경로당에 가는 노인네들이 움직이는 시간이다. 10시가 되면 국경없는 광장에는 실직하거나, 오늘 하루 일거리를 찾지 못한 조선족 동포 혹은 중국 한족들이 아는 사람끼리 모여 연신 담배를 피워대거나, 중국식 장기를 두며 서로의 시간을 소모한다.

바로 옆의 국경없는 거리에서는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 인도네시아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거리의 상점들도 가게 앞을 청소하고, 물건을 새롭게 진열하며 하루 장사를 위해 열심이다.

정오 무렵 국경없는 광장에 위치한 복지관 1층에는 무료급식을 먹기 위한 사람으로 분빈다.

이 급식은 한 사회복지단체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이 날의 메뉴는 쌀밥과 된장국에 콩나물무침과 김, 김치이다. 이 급식은 외국인을 위한 급식이 아니라, 나이 드신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 복지 차원에서 제공되는 음식이다. 급식을 기다리는 사람 중의 대부분은 중국 출신의 조선족 동포이다. 뒤늦게 나이 들어 한국 국적을 회복했으나, 일을 해서 먹고 살기에는 힘이 부쳐 이제는 정부의 사회복지제도에 의지해 삶을 사는 이들이다. 일요일에는 구세군에서 음식을 제공한다.

국경없는 거리에는 휴일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숫자의 사람이 통행하지만, 오후가 되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보러온 사람, 오전 하루 쉬고 오후 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근로자, 실직하여 일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 저녁장사를 위해 노래방을 여는 업주 등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핸드폰 가게에서는 파격세일이라는 문구도 모자라 계속해서 경쾌하고 빠른 최신 유행가요를 크게 틀어 손님을 유인한다.

오후 6시가 넘어서면 점차 거리는 사람들로 넘치고 불 켜진 곳이 늘어나 활기를 띤다. 하루 근무를 끝내고 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평소 사고 싶었던 옷을 보는 사람, 근처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친구와 술 한 잔을 하는 사람, 전화방에서 고국의 누구와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사람, 한국인이 모르는 이국 과일을 좀 더 싸게 사려고 외국인 종업원과 흥정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모습은 같은 시간대의 한국 어느 도시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다만 가까이서 보면 그들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고, 단지 사고파는 물건 중에 한국의 여타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 있기 때문에 이채로울 뿐이다.

원곡동의 밤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밤 10까지 문을 여는 은행, 24시간 열려 있는 편의점과 노래방, 술집, 음식점, 마을 곳곳에 위치한 현금지급기까지 온통 환한 조명을 밝히며 손님을 기다린다. 밤 10시가 되니 마을에는 자율방범대원의 순찰이 시작되고, 하나 둘씩 가게는 문을 닫는다.

이제 그들에게 고달픈 하루가 끝난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고달픈 하루의 시작인가. 평일은 ‘평화스러운 하루’가 아닌, 고달픔이 연속되는 ‘평상의 하루’의 준말이 아닐까? 어쨌든 국경없는 마을의 긴 하루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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