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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동헌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1602
한자 安山東軒韻
영어의미역 At Ansan Government Offic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한시
작가 홍성민
창작연도/발표연도 조선 후기

[정의]

조선 후기 홍성민이 경기도 안산 관아를 방문하고 그 감회를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개설]

홍성민(洪聖民)[1536~1594]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시가(時可) 호는 졸옹(拙翁)이다. 1564년(명종 19) 문과에 급제한 후 정자(正字)와 교리(校理) 등 청현직을 지낸 후, 1575년(선조 8) 호조참판 재직시 사은사로 명나라에 건너가 왕실의 잘못된 계행(系行)을 바로잡는 종계변무(宗系辨誣)에 힘써 명나라 황제의 허락을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에 책록되어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졌다. 「안산동헌운」은 임진왜란 중 안산동헌을 방문하고 그 느낌을 표현한 작품이다.

[내용]

난리 중 혹한 속에서 공무로 안산을 방문하여 관계자들이 동헌에 모였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 정작이 지은 「안산 객사」에서 황폐화된 객사의 처참한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안산동헌운」에서 보듯 군수가 공무를 처결했던 동헌 역시 옛 모습이 아니었다. ‘찬바람’과 ‘눈보라’, ‘간난’과 ‘신고’, 그리고 ‘띠집 속 소덕석’을 그리워하고 있다면 이미 풍류를 즐기기 위해 모인 자리는 아니다.

냉운표설략전산(冷雲飄雪掠前山)[찬바람 눈보라 앞산을 때리고]

일미간신재객간(一味艱辛在客間)[간난과 신고 끝에 객관에 들었네]

하처우의모옥리(何處牛衣茅屋裏)[어디라 띠집 속 소덕석이라도 덮고]

폐창조일부지한(閉窓朝日不知寒)[창 닫고 아침을 맞으면 추위쯤은 잊으리]

[의의와 평가]

시인은 이미 파괴되어 한 점 한기(寒氣)조차도 가릴 수 없는 안산 동헌(東軒)의 모습을 표현하며, 취암봉 밑 아름답게 지어졌던 동헌까지도 객관과 함께 철저히 파괴되었음을 전해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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