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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부리와 지당대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1513
한자 古亭-至當大監
영어의미역 Jidangdaegam of Gojeongburi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
집필자 이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담|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지당대감|지당대감 집 가솔과 하인배
관련지명 월입피|고정부리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월입피로 낙향한 지당대감|행패를 부리는 지당대감 집 가솔과 하인배

[정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에서 고정부리와 지당대감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안산』과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에 수록되어 있다. 『안산시사』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1997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주민 이복영[69]이 구연한 것을 이한기·이정태가 채록하였다가 후에 이현우가 재정리하였다.

[내용]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은 구한말까지만 해도 ‘월입피(月入陂)’라는 고유 지명으로 불려 왔다. 조선 말기 1백 년 전만 해도 월입피 앞에는 바닷물이 들어와 상선 및 여객선의 출입이 빈번하였다. 당시 영의정을 지낸 사람으로 고종(高宗)[1852~1919]과 생일이 똑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충청도 태생으로 영의정까지 지냈으나 고종의 생일을 축하하느라 자신의 생일을 집에서 지내지 못하였다. 그는 본래 풍류를 좋아하고 미색을 탐하는 성격으로, 고종이 무엇을 묻든지 늘 “지당한 줄로 아뢰오”라고 말하여 ‘지당대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당대감이 벼슬을 떠난 후 낙향한 곳이 월입피였는데, 지당대감이 이곳을 택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월입피 뒤에 위치한 산은 그 형태가 마치 상좌 중이 고깔에 장삼을 걸치고 앉아 있는 듯하고, 그 뒤에 자리 잡은 광덕산(廣德山)은 건강한 선비가 아름다운 상좌 중을 앞에 두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이러한 산세 때문인지 월입피 태생의 남자들은 건강하고, 또 여자들은 모두 미색을 갖추었다고 알려졌다. 지당대감은 바로 이 풍문을 들고 미색이 많은 곳이라 하여 월입피로 낙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영의정을 지낸 집이라 하여 지당대감 집에 살고 있는 가솔들이나 하인배들은 행패가 매우 심하였다. 누가 담뱃대만 물고 길을 가도 하인들이 덤벼들어 행패를 부렸고,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동네 사람들의 금품을 갈취하거나 술을 빼앗아 먹었다. 지당대감의 가솔들과 하인배들이 주로 행패를 부리던 장소가 월입피마을의 끝 부분인 ‘고정부리’였는데, 그 당시에는 이 자리에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느티나무 밑에 정자가 세워져 있어 이곳을 ‘고정(古亭)부리’라 불렀다 한다.

[모티프 분석]

「고정부리와 지당대감」의 주요 모티프는 ‘월입피로 낙향한 지당대감’과 ‘행패를 부리는 지당대감 집 가솔과 하인배’이다. 지당대감은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이나 풍류를 좋아하고 미색을 탐하여 미인들이 많은 월입피로 낙향하였는데 지당대감의 하인들이 월입피에서 행패를 부리며 동네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는 이야기로, 하인들이 행패를 부린 곳에 오래된 느티나무와 정자가 있어 그곳을 ‘고정부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권력자와 그 주변인들의 세도와 행패를 말하는 이야기로 전해 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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