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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1160
한자 姜世晃
영어음역 Gang Sehwang
이칭/별칭 첨재(忝齋),노죽(露竹),산향재(山響齋),표암(豹菴),표옹(豹翁),헌정공(憲靖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우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서화가|서화평론가
출신지 서울특별시
성별
생년 1713년연표보기
몰년 1791년연표보기
본관 진주
대표관직 한성부판윤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 및 서화평론가.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광지(光之), 호는 첨재(忝齋)·노죽(露竹)·산향재(山響齋)·표암(豹庵)·표옹(豹翁). 할아버지는 강백년(姜柏年), 아버지는 강현(姜鋧),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처는 진주유씨(晉州柳氏)와 나주나씨(羅州羅氏)이다. 아들로 진주유씨 소생인 강인(姜[人+寅])·강흔(姜俒)·강관(姜[人寬])·강빈(姜儐)과 나주나씨 소생의 강신(姜信)이 있다. 강신의 아들 강이오(姜彝五), 강흔의 손자 강진(姜晉)이 그림으로 이름이 있었다.

[활동사항]

강세황은 한양에서 태어났다. 32세 때 가난 때문에 한양을 떠나 처가가 있는 안산으로 이주하여 처음 벼슬길에 오르는 61세 때까지 30여 년 간 학문과 서화에만 전념하였다. 시, 글씨, 그림을 모두 잘하여 시서화 삼절(三絶)로 불렸으며, 당시의 문화계 즉 ‘예원(藝苑)’의 총수로 일컬어졌다.

매형인 임정(任珽)의 영향을 받았고, 안산에 거주하며 처남 유경종(柳慶種) 외에도 허필(許佖), 이수봉(李壽鳳) 등과 절친하게 지냈으며, 이익(李瀷), 강희언(姜熙彦) 등과도 교유하였다. 영조의 배려로 61세 때 처음 벼슬길에 올라 64세 때 기구과(耆耉科)에, 66세 때 문신정시에 수석 합격하여 영릉참봉(英陵參奉), 사포별제(司圃別提), 병조참의, 한성부판윤 등을 두루 거쳤다.

[학문과 사상]

강세황은 한국 회화사에 있어 산수와 화훼에서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켰으며, 진경산수화를 발전시키고 풍속화·인물화를 유행시켰으며, 새로운 서양화법을 수용하는 등의 공을 남겼다. 작품 세계에 있어 평생 속기(俗氣) 없는 글씨와 문인화를 추구하였으며 공간감의 확대, 담백한 필치, 먹빛의 변화와 맑은 채색 등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또 서화에 대한 확고한 이론과 뛰어난 감식안으로 수많은 서화평을 남겨 당대 최고의 평론가의 위치에 있었다. 제자로는 김홍도(金弘道)신위(申緯) 등이 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표암유고(豹庵遺稿)』가 있으며, 대표적 회화 작품집 및 작품으로 『현정승집(玄亭勝集)』, 『첨재화보(忝齋畵譜)』, 『표현연화첩(豹玄聯畵帖)』, 『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 『임왕서첩(臨王書帖)』, 「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 「난죽도(蘭竹圖)」, 「묵죽팔폭병풍(墨竹八幅屛風)」 등이 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헌정(憲靖)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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