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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834
한자 白南薰
영어음역 Baek Namhun
이칭/별칭 해온,장손,백장손,백남훈(白南勛)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하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이지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육자|정치인
성별
생년 1885년연표보기
몰년 1967년연표보기
본관 수원
대표경력 민정당 최고위원

[정의]

일제강점기에서 현대 안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정치인.

[개설]

본관은 수원(水原), 호는 해온(海溫), 아명은 백장손, 초명은 백남훈(白南勛)이다. 아버지는 백진모(白鎭模)이다. 1885년 출생하여 1967년 사망하였다. 묘는 안산시 상록구 장하동에 있다가 1987년 가을 모란공원묘지로 이장되었다. 묘비 비문은 주요한(朱耀翰)이 짓고, 이기우(李基雨)가 썼다.

[활동사항]

백남훈은 19세에 장연공립소학교를 마친 후 20세에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5년(고종 42) 장연예수교회가 세운 광진학교(光進學敎) 교사로 재직하며, 김구(金九)·채원용(蔡元瑢)과 함께 장연군무 학무위원으로 선출되어 해서교육총회(海西敎育總會) 결성에 관여하였다. 24세에 상경하여 경신학교와 보성학교 1·2부 청강생을 거쳤다.

1909년 일본으로 건너가 1913년 메이지학원, 1917년 와세다대학 정치학부를 다니며, 학생운동과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재일 유학생학우회 회장, 1917년부터는 재일동경조선기독교 청년회 총무를 지내면서 1919년 2·8독립선언 때 실무를 거의 전담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진주일신여학교, 부산동래고등여학교를 거쳐 서울오성학교 후신인 협성실업학교, 광신상업학교 등에서 민족 교육에 몰두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 말기에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해방과 함께 한국민주당에 참여, 정계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5년 민주당 발족 이래 최고위원을 지내고, 1960년 제5대 민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1962년 신민당 전당대회의장, 1963년 민정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나의 일생』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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