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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741
한자 洪處尹
영어음역 Hong Cheoyun
이칭/별칭 지임(之任),안분재(安分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진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성별
생년 1607년연표보기
몰년 1663년연표보기
본관 남양
대표관직 예조참의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지임(之任), 호는 안분재(安分齋). 할아버지는 진사 홍영필(洪永弼)이고, 아버지는 경기관찰사를 지낸 홍명원(洪命元)이며, 어머니는 윤민준(尹民俊)의 딸이다. 경기도관찰사·승정원도승지·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홍수주(洪受疇)[1641~1704]가 아들이다.

[활동사항]

홍처윤(洪處尹)[1607~1663]은 1639년(인조 17)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예문관검열과 감찰을 거쳐 외직으로 홍산현감을 역임하였다. 1646년(인조 24) 시관(試官)이 되었으나, 과거시험에 부정 시비가 일자 급제자는 파방되고 홍처윤은 삭직되었다. 2년 뒤에 복직되어 사간원정언과 홍문관수찬을 역임하였고, 1650년(효종 1) 응교로 『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사헌부지평으로 영의정 김자점(金自點)을 탄핵하였으며, 교리가 되어 붕당 정치의 정당성을 논하다가 삭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배천군수로 선정을 베풀었다.

1652년(효종 3) 세자시강원보덕과 의정부사인을 거쳐 교리가 되어서는 “사노(私奴)를 충군(充軍)하는 일은 온당하지 않다.”라는 소를 올렸다. 효종이 옛 성인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뜻을 알고자 『서전』에 쓰여 있는 천문 관측 기계인 기형(璣衡)을 만들라고 명하자 이를 제작하여 바쳤다. 이 공으로 성균관직강·홍문관수찬이 되었으나 곧 삭직되었다.

1654년(효종 5) 다시 세자시강원보덕이 되고 성균관직강·교리를 거쳐 1656년 금성군수, 1658년 응교·사간원사간·의정부사인, 이듬해 홍문관수찬·사간원사간·성균관사예·종부시정 등을 지냈다. 효종이 승하하자 의정부사인겸빈전도감도청이 되었고, 이어 교리겸한학교수를 거쳐 통정대부로 승진한 뒤 승정원동부승지가 되었다. 이듬해 형조참의·황해도관찰사를 거쳐, 1663년 첨지중추부사·예조참의 등을 지냈다.

[묘소]

묘소는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석수골에 있으며, 1991년 안산시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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