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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727
한자 韓聖輔
영어음역 Han Seongbo
이칭/별칭 여석(汝碩),이은정(理隱亭),청원군(淸原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응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620년연표보기
몰년 1697년연표보기
본관 청주
대표관직 연안부사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여석(汝碩), 호는 이은정(理隱亭). 아버지는 청흥군(淸興君) 한수원(韓壽遠),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이영원(李榮元)의 딸이다.

[활동사항]

한성보는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서 태어났으며 송시열(宋時烈) 문하에서 수학했다. 음직(蔭職)으로 1658년 돈녕참봉(敦寧參奉)이 되고 이듬해 빙고별검(氷庫別檢), 제용직장 등을 거쳐 1663년 예안현감, 1675년 남원부사로 나아갔다가 1680년 청평부원군(淸平府院君) 한응인(韓應寅)의 적장손이라 하여 가자(加資)되었다. 1681년 성천부사에 이어 순흥부사, 연안부사 등 여러 관직을 두루 지내고, 할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아 청원군(淸原君)에 습봉되었다.

1688년에 소(疏)를 올려 나양좌(羅良佐)의 무함을 변론하였고, 계자(系子) 한배하(韓配夏)가 그 아우 한배주(韓配周)와 더불어 송시열을 배반하여 갖은 비방을 다하자 선생을 죽이려면 나부터 먼저 죽이라고 준절히 꾸짖기도 하였다. 그 뒤 송시열이 모함으로 해를 입자 애석 통분하며 관직에서 물러나 초야에 묻혀 독서로 소일하다가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 산63-6번지[삼화길 20-40]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70년(현종 11) 회덕현감 재임 중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선정비가 대전광역시 대덕구 읍내동 큰 암석에 세워져 있다. 왕이 한성보의 부음을 듣고 지제교 조태채(趙泰采)를 파견하여 치제하게 하였다. 아들 한배하의 벼슬과 명망이 높아져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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