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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724
한자 韓配夏
영어음역 Han Baeha
이칭/별칭 하경(夏卿),지곡(芝谷),청원군(淸原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응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650년연표보기
몰년 1722년연표보기
본관 청주
대표관직 공조판서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하경(夏卿), 호는 지곡(芝谷). 증조부는 한덕급(韓德及), 할아버지는 한수원(韓壽遠), 아버지는 판관 한성익(韓聖翼)이다. 청원군(淸原君) 한성보(韓聖輔)에 입양되었다.

[활동사항]

한배하는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서 태어났으며 윤증(尹拯) 문하에서 수학했다. 1693년(숙종 19) 통덕랑으로 알성시에 병과 1등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에 제수되었고, 1700년 옥중의 죄수와 통교(通交)한 강화유수 민진후(閔鎭厚)를 탄핵했다. 1706년 홍문록(弘文錄)에 오르고 필선(弼善)을 지냈다.

1708년 동래부사에 임명되어 임지에 부임하자 극심한 가뭄으로 논바닥이 갈라지고 백성들은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만 짓자 한배하는 객사 앞에 장작을 쌓게 하고 “이곳에 와서 참상을 보게 되니 나의 부덕이 원인이므로 스스로 목숨을 버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내가 죽은 뒤 부디 백성들이 편하게 살게 되길 바란다.”라고 말하며 장작더미에 불을 붙일 것을 명했다.

그러나 감히 불을 지필 사람이 없자 그는 엄한 어조로 하인들을 꾸짖자 한 하인이 눈물을 흘리며 불을 지폈다. 장작더미에 태연히 앉아 있는 그의 옷깃에 불길이 붙으려는 순간 별안간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굵은 빗줄기가 2일 간이나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동래부 백성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짓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듬해 충청도관찰사로 나아갔다가 지평 이정억(李禎億)의 탄핵을 받고 무주부사로 좌천되었다가 1719년 한응인(韓應寅)의 작위를 이어 청원군(淸原君)을 습봉하여 5대(五代)에 걸친 봉군(封君)이 되었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그 뒤 지의금부사, 내의원제조를 거쳐 1722년(경종 2) 공조판서로서 알성시의 독권관(讀券官) 등을 역임했다.

1725년(영조 1) 충훈부당상으로 재임 중 화원 진병해(秦丙奚)에게 목호룡(睦虎龍)의 초상을 그리도록 강요했다는 혐의를 받고 관작을 추탈당했다가 죽은 지 3년 뒤에 사실이 제대로 판명되어 추복(追復)되었다. 당파에 있어 양부 한성보송시열(宋時烈)의 가르침에 따라 노론의 적극적 지지자였으나 한배하송시열을 극렬 비판하며 소론으로 돌아섰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산18-6번지에 있다가 뒤에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광생리로 이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좌찬성겸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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