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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456
한자 竟成堂
영어음역 Kyeongseongdang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신대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가
양식 무고주칠량(無高柱七樑) 형식|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850년경
소재지 주소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지도보기

[정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진주유씨 21세손인 유신[1748~1790]의 아들 유중서(柳重序)[1779~1846]가, 둘째 아들 유방[1823~1887]이 살림을 낼 때 지은 집이다. 경성당은 원래 서울 남산에 있는 진주유씨 18세손 유명천(柳明天)·유명견(柳命堅) 형제가 공부하던 서실인데, 후에 유원성(柳遠聲)이 차명하여 당호로 썼다.

[변천]

경성당은 1850년경 건립된 가옥으로, 안채는 약 200여 년 전에 지어졌고 사랑채는 약 170여 년 전에 지어졌다. 아래채는 1983년 철거되고, 그 자리에서 동쪽으로 조금 물러난 자리에 시멘트 건물 한 채를 세웠다. 사랑채는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안채 또한 1983년에 철거하고 서울에 있던 한옥을 이건하였다. 안채의 재목은 서울의 미아리와 종로구 당주동에 있던 헌 한옥에서 많이 가져다 썼으며, 들보는 인천에서 구입한 수입목[미송]으로 대신하였다.

원래는 사랑채 동남쪽에 각 1칸씩의 잿간과 뒷간, 그리고 3칸의 헛간으로 구성된 헛간채가 따로 있었고, 노비들이 기거하던 4채의 행랑채도 있었다. 또 사랑 마당 남쪽에 330.58㎡에 이르는 넓은 연못이 있었으나 사랑채 누마루 곁에 있는 우물물이 줄어들어 급수가 어려워지는 바람에 40여 년 전 밭으로 만들었다.

[형태]

경성당의 안채·사랑채·아래채는 튼 ‘ㅁ’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가인 안채 부엌 서쪽으로 각 1칸씩의 헛간과 뒷광이 이어 달려 있는데, 뒷광에는 김치·짠지 등이 담긴 독을 두었다. 뒷대문은 행랑 출입을 위한 것이다. 대청 지붕틀은 무고주칠량(無高柱七樑) 형식으로 걸었으며 전면에는 여섯 짝의 분합문을 달았다.

사랑채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서쪽 끝에 1칸의 누마루를 내어 지었다. 누마루 뒤쪽에 각 1칸씩의 방[작은사랑]과 마루가 있었으나, 마루를 반으로 줄이는 대신 방을 그만큼 넓혔다. 큰사랑과 툇마루 사이에는 가로 57㎝, 세로 130㎝의 두 짝 여닫이를 설치하고 동쪽 끝에 벽장을 붙였다. 벽장문은 네 짝으로 크기는 각각 가로 69㎝, 세로 133㎝이며, 매화·난초·대나무 등의 그림을 붙여 선비의 방다운 분위기가 풍긴다.

[현황]

2009년 현재 경성당을 지키고 있는 이는 고인이 된 유문형(柳文馨)의 부인이자 차종부가 되는 권보남(權寶南)이다. 고 유문형 집안은 기호 남인을 대표하는 3대 가문중 하나인 진주유씨 집안으로, 이 집안은 대종가에서 5대조 때 분파한 차종가이다. 고 유문형은 진주유씨 27세손이다. 경성당은 2017년 9월 안산시 향토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경성당은 19세기 경기도 안산 지역의 양반 사회 주거 양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문화적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5.04 내용 수정 오: 경성당은 원래 정재골에 있는 진주유씨 18세손... 정: 경성당은 원래 서울 남산에 있는 진주유씨 18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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