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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037
한자 浦口
영어음역 Pogu
영어의미역 Port
이칭/별칭 진(津),도(渡),포(浦),진(鎭),항(港)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명우

[정의]

경기도 안산 지역에 있는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개설]

강이나 냇가 또는 좁은 바닷목에 배가 접안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설을 나루라고 하며 한자로는 도(渡), 진(津)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나루보다 규모가 큰 바닷가나 큰 강어귀의 접안 시설은 포(浦)라고 부르며 포보다도 규모가 더 큰 것은 항(港)으로 부른다. 또한 지리적 측면에서 나루가 강이나 냇가 등 내륙에 위치하는데 비해 포구는 큰 강의 어귀나 바다에 접해있으며 나루의 배가 주로 행인을 건네주는 교통수단으로 기능한다면 포구의 배는 대체로 교역선이나 어선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일정 정도 의미 차이가 나는 것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현황]

경기도의 서해안 지역은 갯벌이 넓은데다 수산자원이 풍부한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어 옛날부터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포구가 발달했으며 이 점에 있어서는 그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안산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안산 지역에 형성되었던 주요 포구 또는 나루로는 성곶포[성머리포구]·원당포[둔배미나루]·조구나루·사리포구·초지나루·흥성리나루·말부흥나루·진두나루 등을 들 수 있으나 모두 대규모로 전개된 교량 및 방조제 건설, 반월공업단지의 조성 등과 더불어 급격한 도시화가 추진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대신 탄도항·풍도항 등이 새롭게 활성화되고 있다.

1. 성곶포(聲串浦), 원당포(元堂浦), 조구나루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에는 ‘안산군에는 원래 강이나 호수가 없지만 성곶포와 원당포 두 포구가 있어서 조수(潮水)가 출입할 때 상선과 어선이 왕래하고, 주민들이 처음에 농사를 짓지 않고 오로지 고기잡이를 일삼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성곶포는 지금의 단원구 성포동 589번지 일대에 해당하며, 예로부터 어업이 번성하여 많은 어선들이 드나들었던 곳으로 성포동의 머리 부분이라는 뜻에서 ‘성머리포구’로도 불렸다.

또한 원당포는 현재의 단원구 초지동 77번지 일대에 해당하며, 인근 지역에서 포구가 가장 먼저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원포(元浦)라고도 하였다. 고려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서 둔전(屯田)이 있었기 때문에 둔배미나루로 불렸으며 당진·안흥·태안 등 충청도 지역의 많은 고깃배들이 왕래하는 등 안산 지역에서 가장 큰 포구였다. 또한 이곳의 어부들에게는 임금에게 진상할 고기를 잡는 배라는 뜻의 찬물선(饌物船) 깃발이 내려졌다고도 한다.

조구나루는 현 상록구 이동 665번지[광덕3로 296] 일대에 해당하며 1950년대 초까지 성머리포구와 함께 이 지역의 어업전진기지로서 중선 규모의 어선들이 많이 드나들었던 곳으로 예전에 소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송호(松湖)라고도 불렸다. ‘조구’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광주유수(廣州留守)가 소금을 모아서 한양으로 조공 바치러 가던 곳이라 하여 조공(租貢)나루라 하였다가 조구로 변했다는 설과, 조기배가 많이 드나들어[조구는 조기의 사투리]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한편 1953년 초지동 별망(別望) 앞에 방조제를 쌓게 되면서 성머리포구·둔배미포구·조구나루가 모두 포구에서 농경지로 변화된데 이어 1977년의 반월신도시 개발과 더불어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현재는 자연마을까지 사라져버린 상태이다.

2. 사리포구

별망 앞 방조제 축조로 내륙 쪽에 있던 포구가 폐쇄된 대신 방조제에서 바닷가 쪽 약 1㎞ 지점에 새로운 포구가 형성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사리포구(四里浦口)이다. 이 지역은 6·25전쟁 때까지 칡넝쿨과 잡목이 우거진 불모지였으나, 방조제가 축조된 후 정부가 난민들을 위해 50여 세대의 주택을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구라(救羅)마을에 정착한 입주민들이 생업으로 어업에 종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어촌으로 변모하였고, 횟집들이 들어서면서 포구는 더욱 번성하게 되었다.

반월 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된 이후인 1978년 4월에는 어민들이 힘을 모아 어시장을 형성하여 풍부한 해물들을 싼값으로 공급하자 인근 도시에서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기도 하였다. 사리포구에서는 새우·꽃게·광어·민어·농어·우럭·낙지 등 다양한 어종을 공급하고 있으며 이중 새우의 경우 하루 20드럼의 어획고를 올릴 정도로 특히 많이 공급되고 있다.

이처럼 사리포구는 짧은 기간에 형성된 포구임에도 불구하고 140여 척의 어선이 드나들 정도로 성황을 이루게 되면서 경기도 관내 최대 규모의 포구가 되었으며 인천시 남동구의 소래포구 및 화성시 송산면의 마산포구와 함께 경기 서해안의 3대 포구로 불릴 만큼 명소로 알려졌다. 그러나 1994년 농어촌진흥공사가 대단위 간척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시화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바닷물이 막혀 어선의 출입이 끊어지고 신도시 개발과 함께 어시장과 횟집들도 모습을 감추었다. 포구가 있던 현 상록구 사동 일원에는 현재 여러 가지 체육시설을 갖춘 호수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3. 초지나루, 흥성리나루, 말부흥나루, 진두나루

초지나루는 현 단원구 초지동 657번지 일대에 위치했으며 고려시대부터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초지량영(草芝梁營)이 있었던 곳이다. 1953년 별망 앞에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둔배미나루를 이용하던 어선들이 이곳에 많이 정박했으나 1970년대 후반 반월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마을과 나루터도 없어졌다. 흥성리나루는 현 단원구 대부북동 산169-5번지 일대에 있었으며 1990년 대부도와 선재도가 다리로 연결되면서부터 현 단원구 대부남동 13번지 일대에 있었던 말부흥나루와 건너편 대부동 74번지 일대에 있었던 진두나루와 함께 급격히 쇠퇴하였다.

4. 탄도항, 풍도항

단원구 선감동 726번지 일대에 있는 탄도항은 대부도선감도를 잇는 방조제가 건설된 이후 인근에 누에섬전망대·안산어촌민속박물관·수산물센터 등이 시설되면서 대규모 복합해양레저단지 개발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으며 선착장도 활성화되고 있다. 탄도항에서 바닷길로 20여㎞ 떨어진 현 단원구 풍도동의 풍도항도 해양테마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 잡혀 있어 서해안시대의 전개와 더불어 향후 급속한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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