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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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貞正翁主
영어의미역 Jeongeongwongjoo|King Sunjo's Daughter|Princess Jeongj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명우

    [상세정보]

    성격 왕족
    성별
    생년 1595년연표보기
    몰년 1666년연표보기
[정의]
조선 14대 왕인 선조의 여덟 번째 딸.

[개설]
선조(宣祖)의 첫 번째 비(妃)인 의인왕후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며, 후궁 공빈김씨 소생으로 임해군광해군이 있었다. 선조는 임진왜란을 치르는 동안 임해군이 성질이 포악하다는 이유를 들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그런데 선조의 두 번째 왕비인 인목왕후가 뒤늦게 영창대군을 낳으면서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즉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大北派)와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파(小北派)로 나뉘어 정권 다툼을 벌이게 된 것이다.

[가계]
아버지는 선조(宣祖)이며, 어머니는 정빈홍씨(貞嬪洪氏)로 현감을 지낸 홍여겸(洪汝謙)의 딸이다.

[활동사항]
정정옹주(貞正翁主)[1595~1666]는 선조의 여덟 번째 딸로 해주행궁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났다. 아버지한테 직접 『효경(孝經)』과 『내칙(內則)』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자라면서 단정하고 의젓하여 스스로 예법을 배워 실천하였다. 1604년(선조 37) 정정옹주라는 작호를 받았고, 1606년 교리 유시행(柳時行)의 아들 진안위(晋安尉) 유적(柳頔)과 혼례일을 택하려 하였으나, 유적이 부친상을 당하여 탈상 후인 1610년(광해군 2)에 출가하였다.

한편 서자로서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왕통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동시에 후환을 없애고자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유폐시키고 살해한 뒤 인목대비(仁穆大妃)마저 폐위하려 하였다. 이때 정정옹주는 남편과 함께 대비 폐위를 반대하여 유배 위기까지 몰렸다. 이후 궁궐 출입을 삼간 채 왕실의 대소사에도 참여하지 않고 칩거하던 중 1619년(광해군 11) 남편이 병을 얻어 2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 광해군을 몰아내고 즉위한 인조광해군 치하에서 유적이 정의롭게 처신한 점을 칭송하였으며, 정정옹주에게도 두터운 예로 대우하였다. 후사가 없어 시동생 유영(柳潁)의 아들 유명전(柳命全)을 입양하였으나, 그도 문과에 급제한 지 2년 만에 사망하고 이후 2년여 만에 정정옹주도 세상을 떠났다. 이에 임금이 정사를 폐하고 장례비를 지원해 주었으며 몸소 빈소에 가서 남편 유적과 합장하도록 명하기도 하였다.

이어 내린 유제(諭祭)에서 “왕실에서 종성(宗姓)으로 태어나 성품이 온화·공손하여 어머니의 교훈에 따르니 유가(柔嘉)하고 덕용(德容)하더라. ……선왕의 사랑과 도움이 각별하였고, 스스로 종친들과 돈목(敦睦)하여 잘 돌보고 대우하였으며, 두루 고르게 하였으니, 이것이 옹주가 평생 동안 지키고 남긴 자취이었다.”라며 정정옹주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1871년(고종 8) 유적에게는 효숙(孝肅)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묘소]
묘소는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산50-40번지에 있으며, 1991년 11월 2일 안산시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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