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청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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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安山淸聞堂
영어공식명칭 Ansancheongmundang(Cheongmundang in Ansan)
영어음역 Ansan Cheongmundang
영어의미역 Ansan Cheongmundang Traditional Building
이칭/별칭 청문당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261-15[청곡길 7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신대광

    [상세정보]

    성격 고가
    양식 팔작지붕|맞배지붕
    건립시기/일시 조선 후기
    소재지 주소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261-15[청곡길 77]지도보기
    소유자 진주유씨 성산공파 종친회
    문화재 지정번호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4호
    문화재 지정일 2000년 3월 24일연표보기
[정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안산 청문당진주유씨 16세손 유시회(柳時會)[1562~1635]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유시회는 원래 충청북도 괴산에 살고 있었는데, 유시회의 조카 유적(柳頔)이 선조의 아홉 번째 부마로 정해진 후 유적의 아버지 유시행(柳時行)이 세상을 뜨자, 사위가 한양에서 괴산까지 무려 100㎞ 이상을 왕복할 것을 걱정하여 40㎞ 안쪽에 묘 터를 잡으라는 선조의 명에 따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새 터에 묘를 정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진주유씨는 넓은 사패지(賜牌地)와 안산 바닷가의 어염권을 기반으로 안산에 세거하여 왔으며,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여 조선 후기에는 기호남인(畿湖南人) 3대 가문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안산 청문당은 조선 후기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남인 문사들의 교류 장소가 되었고, 더 나아가 실학의 산실이 되었다. 특히 만권루(萬卷樓)는 조선 4대 서고의 하나로 기호남인들의 학문적인 기반이 되었다.

[위치]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국도 42호선 동쪽의 신갈-안산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 사이에 위치해 있다.

[변천]
2000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되면서 전면 보수하였다. 안산 청문당 앞에 있는 연지 동쪽에 바깥사랑채에 해당하는 연당(蓮塘)이 있었고, 그 서쪽에 현정(玄亭)이 있었으며, 북쪽에는 우물과 느티나무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찾을 수 없다.

[형태]
안산 청문당의 앞마당에 면하여 ‘ㄷ’자형 사랑채가 우뚝 서 있고, 그 뒤로 ‘ㄱ’자의 안채와 ‘ㅡ’자형 아래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트인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팔작기와 지붕집으로 안방 2칸, 대청 6칸, 건넌방 1.5칸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안방 남쪽으로 부엌 칸이 날개처럼 달려 있고, 대청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사랑채는 서쪽으로부터 광 1칸, 일꾼 방 1칸, 대문간 1.5칸, 사랑방 2칸, 서고 2칸이 배열되어 있고, 사랑방 전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가구는 전퇴 5량 형식이고, 지붕은 팔작 형식이다. 안채 동북쪽에 있는 사당은 3칸 규모의 3량가 맞배지붕집으로, 안산 청문당의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뒤뜰에는 화계(花階)가 조성되어 있으며, 화단의 한가운데에는 안산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부곡동 모과나무가 있다. 집 앞에는 오래된 연지가 있다.

[현황]
안산 청문당은 2000년 3월 24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4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진주유씨 성산공파 종친회이다.

[의의와 평가]
안산 청문당은 전형적인 사대부가 건축 양식의 예를 따르고 있고, 조선시대 주거 문화와 정원 문화를 보여 주고 있어 경기도 고가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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